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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여, 바다여의 자아의 집착, 윤리와 구원, 바다의 상징성

by anmoklove 2026. 1. 18.

바다여, 바다여

아이리스 머독의 『바다여, 바다여(The Sea, The Sea)』는 자아의 미망과 구원, 그리고 인간 내면의 도덕적 혼란을 심층적으로 탐색한 심리 철학 소설이다. 이 작품은 배우이자 극작가로 성공한 남자, 찰스 애로비가 은퇴 후 외딴 해변 마을에 집을 짓고 은둔하며 쓴 일기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삶의 번잡함을 떠나 자기반성과 평화를 찾고자 하지만, 바닷가에서 우연히 첫사랑 하틀리와 재회하면서 그 고요한 여정은 강박과 집착, 자기기만으로 물든 혼란의 드라마로 전환된다. 소설의 제목인 ‘바다여, 바다여’는 그가 끊임없이 바라보며, 그 안에서 의미를 투사하려 애쓰는 상징적 공간이며, 자아의 투영이자 무의식의 반영으로 기능한다. 이 작품은 전통적 서사 방식에서 벗어나, 자아 성찰과 타인과의 윤리적 관계를 중심으로 내면을 해부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특히 머독 특유의 윤리 철학이 전면적으로 드러나는데, 이는 ‘선의 개념’을 중심으로 자아의 허위와 타자와의 관계를 윤리적으로 성찰하려는 시도이다. 찰스는 스스로를 선한 사람,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인물로 여기지만, 그의 언행은 오히려 타인을 통제하고 조작하려는 욕망을 드러내며, 윤리적 책임으로부터 멀어져 간다. 이 리뷰에서는 『바다여, 바다여』의 핵심 주제를 세 가지로 분석한다. 첫째, 자아의 집착과 자기기만이 어떻게 관계를 파괴하는지. 둘째, 머독이 제시하는 윤리의 개념과 구원의 가능성. 셋째, 소설 속 바다가 지닌 상징성과 구조적 역할. 『바다여, 바다여』는 인간 존재의 불완전성과 도덕적 선택의 모호함을 철학적으로 사유하게 만드는 작품이며, 현대 소설의 깊이와 가능성을 극대화한 예라 할 수 있다.

바다여, 바다여의 자아의 집착

이 소설의 중심에는 찰스 애로비라는 복잡하고 모순적인 인물이 존재한다. 그는 성공한 연극계 인물로, 은퇴 후 평온을 찾고자 해안 마을로 이주하지만, 곧바로 첫사랑 하틀리의 존재에 사로잡힌다. 그녀는 이미 결혼해 중년의 평범한 여성으로 살고 있음에도, 찰스는 하틀리를 ‘구출해야 할 존재’로 간주하고, 그녀와 함께 도망치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는 이를 순수한 사랑의 귀환, 운명적 재회라고 믿지만, 사실상 그것은 타인을 자신의 기억과 욕망 속 이미지에 가두고 통제하려는 폭력이다. 찰스는 자신의 사랑을 정당화하면서도 하틀리의 의사를 무시하고, 그녀의 남편을 조롱하며, 그녀의 아들을 납치하기까지 한다. 이 모든 행위는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이뤄지며, 그는 그것을 낭만적이고 숭고한 시도라고 착각한다. 머독은 이 인물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쉽게 자기기만에 빠지며, 자신의 욕망을 윤리적 신념으로 포장할 수 있는지를 날카롭게 보여준다. 찰스는 일기의 형식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을 분석하고 정당화하지만, 독자는 그의 언행 사이에서 커다란 괴리를 감지하게 된다. 그의 회고는 왜곡되어 있고, 감정은 과장되며, 현실 인식은 일방적이다. 그는 타인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자신이 만든 이상 속에 타인을 끼워 넣으려 한다. 이로 인해 그의 모든 관계는 왜곡되고, 파괴된다. 이처럼 『바다여, 바다여』는 자아에 대한 과잉 신뢰가 얼마나 쉽게 타자에 대한 폭력으로 전환되는지를 섬세하게 묘사한다. 머독은 찰스를 단죄하지 않으면서도, 그의 행위를 통해 인간 내면의 도덕적 허위와 자기중심성,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삶을 파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찰스는 실패한 구도자이며, 그의 은둔은 자아를 향한 도피가 아니라, 윤리적 타자성과의 결별이었다.

윤리와 구원

아이리스 머독은 단순한 소설가가 아니라, 도덕 철학자이기도 하다. 그녀는 소설을 통해 인간 내면의 윤리적 구조를 해부하고, '선(Good)'이라는 개념을 문학적으로 사유하고자 했다. 『바다여, 바다여』는 그러한 윤리 철학이 가장 강하게 구현된 작품이다. 머독에 따르면, 선은 자아의 욕망을 초월해 타인을 제대로 바라보려는 끊임없는 노력 속에 존재한다. 그러나 찰스는 이 노력을 기피하고, 자신이 상정한 타인의 이미지에 타자를 가두려 한다. 그에게 있어 하틀리는 기억 속에 존재했던 ‘이상적인 여성’이며, 현재의 하틀리는 그 이미지에 어긋난 ‘파괴된 존재’로 여겨진다. 이러한 관점은 찰스가 타인을 실체적 존재가 아닌, 욕망의 대상화로만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머독은 이 소설에서 선이란 무엇인가, 도덕적 인간이란 누구인가, 그리고 사랑이란 타인을 위한 자기 희생인가, 아니면 자아의 연장이자 욕망의 실현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작품 후반부에 이르러 찰스는 자신의 행동이 가져온 결과를 직시하게 된다. 하틀리는 상처를 입고, 그의 주변 인물들은 떠나며, 그는 다시 고립된다. 이때 그는 바다 앞에서 깊은 반성과 후회를 하지만, 그 감정 역시 완전한 깨달음이라기보다는 여전히 자기 중심적이다. 머독은 인간이 완전히 윤리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가에 대해 회의적이면서도, 그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찰스의 반성은 불완전하지만, 그 반성의 시도 자체가 문학이 다루어야 할 윤리적 지점이라는 것이다. 『바다여, 바다여』는 인간이 얼마나 불완전하며, 윤리적 타자성과 대면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통감하게 하며, 동시에 그 어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문학이자 철학이라고 말한다. 이 작품은 구원을 약속하지 않지만, 구원을 향한 고통스러운 시선을 놓지 않는다.

바다의 상징성

소설의 제목이자 중심 배경인 ‘바다’는 이 작품에서 단순한 자연 풍경이 아니다. 바다는 찰스의 자아가 투사되는 공간이며, 동시에 그 자아의 무의식과 대면하는 장소다. 그는 매일 바다를 바라보며 그 안에서 평화를 찾고자 하지만, 실상 그 바다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위협적이며, 통제할 수 없는 존재다. 찰스가 원하는 고요하고 정적인 평화는 존재하지 않고, 바다는 언제나 거칠고 예측 불가능한 흐름을 가진다. 이는 그의 내면 역시 그러하다는 것을 반영한다. 바다는 찰스의 욕망, 불안, 기억, 상처의 총체이며, 그는 바다를 지배하려 하지만, 결국 바다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머독은 바다를 신화적이고 상징적인 대상으로 설정함으로써, 인간 내면의 무의식적 영역과 맞닿게 한다. 특히 바다는 이 소설의 구조적 중심이기도 하다. 소설은 찰스의 일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일기는 바다의 변화와 함께 감정의 파동처럼 흔들린다. 바다가 잔잔할 때는 회상이 이어지고, 바다가 격정적일 때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러한 구조는 소설 전체를 하나의 ‘심리적 풍경’으로 만들어낸다. 또한 바다는 찰스의 마지막 반성의 장소이자, 그가 스스로를 처음으로 객관화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는 바다 앞에서 삶의 실패를 고백하며, 삶이란 결국 타인의 삶과 얽혀 있는 그물망이라는 사실을 희미하게 깨닫는다. 머독은 바다를 통해 삶의 무상함, 자아의 해체, 윤리의 가능성, 그리고 죽음에 대한 명상까지 복합적인 상징을 압축적으로 구현한다. 『바다여, 바다여』는 물리적 바다를 넘어서, 인간 존재가 마주해야 할 가장 심연의 질문들을 은유적으로 형상화하며, 현대 소설이 도달할 수 있는 상징성과 철학적 깊이의 정점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아이리스 머독의 『바다여, 바다여』는 자아에 대한 철저한 탐색과 윤리적 타자성의 불가능성을 사유하는 작품이다. 찰스 애로비는 사랑을 말하지만, 실상은 자기애에 빠져 있었으며, 타인을 이해하려 하지만 결국 자기 투사에 갇혀 있었다. 머독은 이 인물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쉽게 자기기만에 빠지고, 선의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비관적이지 않다. 오히려 이 모든 실패와 혼란 속에서 반성과 사유, 윤리적 시도 자체의 의미를 끌어올린다. 바다는 그런 의미에서 구원의 상징이자, 무의식의 거울이며, 인간 존재의 해체를 유도하는 심연이다. 『바다여, 바다여』는 단지 한 인물의 회고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미로와 도덕적 감각의 좌표를 따라가는 지적 여정이며, 아이리스 머독 문학의 정점이자, 20세기 영문학의 대표적인 심리·윤리 소설로 남는다. 이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한 서사의 즐거움을 넘어, 나 자신과 타자, 윤리와 미망 사이의 경계에 서서 삶의 의미를 묻는 철학적 독서를 경험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