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영화사에서 최초로 좀비를 본격적으로 다룬 블록버스터 부산행은 개봉과 동시에 뜨거운 반응을 얻었습니다. 연상호 감독의 첫 실사 영화이자 100억 원에 육박하는 제작비가 투입된 이 작품은 좀비라는 소재에 대한 호불호를 넘어 흥행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할리우드 좀비 영화와의 비교, 재난 영화로서의 완성도, 그리고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한계와 가능성까지 다양한 시선이 교차하는 이 영화를 세밀하게 분석해보겠습니다.
재난영화 공식을 뒤집은 빠른 전개
부산행은 전형적인 재난영화 공식을 따르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과감하게 뒤집습니다. 일반적으로 재난 영화는 초반부에 캐릭터와 그들의 관계를 천천히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이는 벌어지는 난관을 헤쳐나갈 때 드라마틱한 연출이 가능하도록 관객이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주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재난 영화의 초반부는 자칫 지루해지기 십상입니다. 관객은 재난으로 인한 긴박한 상황을 보려고 기다리는데 캐릭터만 보여주니 답답해지는 것이죠.
부산행은 이러한 함정을 피하기 위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전개됩니다. 프롤로그에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거라는 징조를 남기면서 시작하며, 좀비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까지 긴장을 유지하는 데는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두 지점 사이에 길지 않은 시간 만에 여러 캐릭터를 소개하고, 이들이 탄 열차가 출발하는 것과 동시에 영화도 거침없이 내달립니다. 이러한 빠른 전개는 초반부터 좀비가 등장해 긴장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지루함 없이 관객을 몰입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장점은 동시에 단점으로도 작용합니다. 빠른 전개로 인해 손해 보는 구석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전개가 빠르다 보니 캐릭터에게 충분한 시간을 부여하지 못한 것입니다. 연상호 감독은 부산행에서 캐릭터 하나하나를 살리려고 노력했지만, 한정된 시간에 10여 명을 모두 다루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일부 캐릭터는 손쉽게 소비된다는 인상을 주었고, 이는 영화가 일관되게 드라마에 지나치게 치우치도록 하는 발판으로 작용했습니다.
캐릭터 설정의 의도와 사회적 메시지
부산행의 캐릭터 설정은 단순한 배역 배치가 아니라 영화의 주제를 명확히 전달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입니다. 서구의 직업이 왜 하필 펀드 매니저인지, 용석은 또 왜 버스 회사의 상무인지, 그리고 영국은 왜 야구 선수인지 영화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영국과 용석의 직업이 이야기 전개를 위한 도구라면 서구의 그것은 부산행의 주제를 명확히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공유와 수안이 연기하고 있는 석우와 수안 부녀 지간이 중심으로 자리하며, 이들의 관계는 로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영화에서 익히 보았던 가족 중심의 재난영화 공식을 충실히 따릅니다.
특히 인상적인 캐릭터는 마동석이 연기한 상화와 김의성이 연기한 용석입니다. 상화는 부산행의 진정한 주인공이라 할 수 있으며, 공유 및 마동석 등 인기 배우들의 연기가 이 영화의 흥행에 한몫했다는 평가는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아마 여자분들도 공유보다 마동석에게 더 호감을 갖게 되실 거라고 생각됩니다. 반면 용석은 악당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용인할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르는 일반적인 영화에서 보는 악당들과 달리 한결 인간적입니다. 한국 영화사의 재난 영화인 해운대나 타워와 비교해도 용석은 그나마 소박하고 인간적인 악당입니다.
연상호 감독의 사회적 메시지는 노골적이긴 합니다. 은행이고 나발이고 할 것 없이 대놓고 여러 부류에게 화살을 날립니다. 상화의 휴대전화 소리, 뉴스에서 나오는 정부의 발표, 나중에 기차 안이라 할 수 있는 용석이 상화에게 고하는 말 등 설명할 필요조차 없을 만큼 누가 봐도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용석의 발언은 촌철살인으로 돌아옵니다. 정말 재밌으면서도 뜨끔했던 건 그 화살의 사정거리 안에 우리도 포함됐다는 것입니다. 그와 다른 사람들이 석우 일행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우리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성과와 한계
부산행을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관점에서 평가할 때, 나쁘지 않은 결과임은 분명합니다. 기차라는 밀폐된 공간을 배경으로 삼은 것은 여러모로 영리한 설정입니다. 배경을 한정시키는 것은 스릴과 공포를 전달하기에 유리해졌고, 이리저리 돌아다닐 필요가 없으니 제작비 절감에도 도움이 됐을 것 같습니다. 갑자기 펼쳐진 재난으로 인한 각 캐릭터의 심리와 대립을 팽팽하게 그리기에도 제격이죠. 여타 영화와는 다르게 좀비에게 한 가지 특성을 부여하면서 색다른 시도도 하고 있습니다. 열린 공간이 아니라 닫힌 공간이라는 걸 고려해서 그 속에서 관객의 흥미를 끝까지 유지하려는 노력이 역력하게 엿보였습니다.
가장 기대했던 연상호 감독의 개성은 그럭저럭 살아 있습니다. 물론 이미 짐작한 대로 돼지의 왕이나 사이보그처럼 아무렇지 않게 짓이 없는 분위기가 시종일관 관객을 짓누르지 않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연상호 감독의 작품 중 부산행이 가장 낙천적이고 희망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게 아쉽긴 하지만 예전 작품 대비 제작비가 10배 이상 증가한 영화니 어쩔 수 없습니다. 자기 돈 들여서 찍었다면 모를까 100억 가까이 들어간 영화를 그대로 만들 수 없었겠죠.
그러나 앞선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남긴 고질적인 문제를 부산행도 답습했습니다. 제작비 규모에서 할리우드와 대적할 수 없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CG나 스케일 따위로 이 영화의 문제를 지적할 생각은 없습니다. 조금 티가 나도 괜찮고 스케일이 작아도 괜찮습니다.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근데 그 외의 부분에서까지 눈에 띄는 문제가 발생하니 유감입니다. 원래 재난 영화가 그렇기도 하지만 부산행은 해운대나 타워와 마찬가지로 작정하고 드라마 또는 감성에 집중합니다. 우리가 아는 연상호 감독답지 않게 말랑말랑합니다. 물론 이 영화가 무엇을 추구했는지를 알지만 그 정도가 좀 과합니다.
빠른 전개로 인한 손해는 대사에서도 노출됩니다. 종종 너무 직접적이거나 뜬금없는 대사가 툭툭 튀어나옵니다. 굳이 저렇게까지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재난 영화로서의 드라마는 수용할 수 있었지만 좀비가 등장하는 영화로서의 스릴러적 요소는 확실히 아쉬웠습니다. 레지던트 이블을 연상하는 장면은 허망하게도 얼렁뚱땅 넘어갑니다.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연출한 것이 정말 아쉬웠습니다. 상황 설정과 그걸 타개하는 방법까지도 좋았는데 연출이 제대로 살리지 못했습니다.
부산행은 한국에서 시도한 좀비 재난 블록버스터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동시에 한국 영화니까 이 정도면 괜찮다는 시선과 무조건 안 본다고 태도를 취하는 편견 사이에서 균형 잡힌 평가가 필요합니다. 좀비라는 소재가 등장하는 영화인 만큼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흥행에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빠른 전개와 인기 배우들의 연기가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는 점은 분명한 성취입니다.
[출처]
부산행 가이드 리뷰 by 발없는새: https://youtu.be/inUoYMG3tYU?si=Z6ySF1F9upy0jt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