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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개선문 속 국적의 부재, 감정의 잔해, 복잡한 공간

by anmoklove 2025. 11. 6.

소설 개선문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개선문은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의 유럽을 배경으로, 파리에서 망명자로 살아가는 한 독일 외과의사의 삶을 통해 인간의 고독, 사랑, 전쟁의 트라우마를 치밀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서부전선 이상 없다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레마르크는 이 작품에서 개인의 감정과 시대의 충돌을 더욱 섬세하고 서정적으로 풀어낸다. 전쟁의 포화 속을 직접 겪은 작가로서 그는 인간의 생존 조건을 단순한 전투가 아닌 ‘정체성의 상실’과 ‘감정의 잔해’ 속에서 탐색한다. 개선문은 레마르크 문학의 한 정점으로 평가받으며,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선 망명자의 존재론적 서사, 사랑의 회복 불가능성, 그리고 도시 파리의 상징성을 탁월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소설 개선문 속 국적의 부재

소설의 주인공 라비크는 독일 나치 치하에서 도망쳐 프랑스에 머무는 망명자다. 그는 의사지만 불법 체류자이기 때문에 병원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없고, 밤마다 은밀하게 환자를 수술하거나, 동료 망명자들과 몰래 연결된 네트워크를 통해 생계를 이어간다. 라비크의 삶은 고립되어 있으며, 그는 자신의 이름과 과거, 감정을 스스로 지우려 한다. 심지어 그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전쟁이 한 인간에게서 어떻게 정체성의 기반을 통째로 지워버릴 수 있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설정이다.

레마르크는 나치 독일로부터 추방당하고, 시민권을 박탈당한 자신의 경험을 라비크에게 투영한다. 실제로 레마르크는 독일에서 "비독일적인 작가"로 간주되어 책이 불태워졌고, 결국 스위스와 미국을 전전하며 망명자로 살아야 했다. 이러한 작가의 체험은 소설의 배경과 주제에 깊이 스며든다. 그는 라비크를 통해 국가라는 틀을 잃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실존적 질문을 던진다.

라비크의 망명은 단순한 ‘국적의 부재’가 아니라, 언어, 이름, 사회적 지위를 모두 잃은 상태이며, 이는 마치 존재 자체가 사회에서 삭제된 듯한 느낌을 준다. 그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과거를 말하지 않으며, 어떤 사회적 지위도 주장하지 않는다. 그저 살아남는 것이 전부다. 이는 레마르크가 반복해서 다루는 주제이자, 20세기 전반기 유럽을 휩쓴 전체주의와 폭력의 결과로 나타난 인간의 ‘지워짐’을 보여주는 극적인 사례다.

망명자라는 존재는 이 작품 속에서 인간 조건의 가장 날것 그대로를 상징한다. 그는 이름 없이 살아야 하고, 사랑을 두려워하며, 과거를 기억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인간적인 감정인 그리움, 외로움, 소속감의 결핍이 라비크를 괴롭히며 끝까지 놓아주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개선문은 단순한 역사소설이 아닌, 실존문학의 계보 안에서 깊은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감정의 잔해 인간 회복의 수단

라비크와 조안 마두의 관계는 작품의 서사 중심을 이루며, 단지 로맨스가 아닌 전쟁이 망가뜨린 감정의 잔해를 복원하려는 두 사람의 처절한 시도를 담는다. 조안은 한때 유명했던 여배우로, 자유롭고 화려하지만 내면은 불안정하고 고독하다. 라비크는 그녀에게서 인간적인 따뜻함과 소속감을 느끼지만, 동시에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는 이미 아내를 나치에 의해 잃었고, 사랑은 그에게 다시 상처를 줄 수 있는 위협으로 다가온다.

조안은 라비크의 침묵과 방어적 태도에 지친다. 그녀는 자신을 진심으로 바라보길 원하지만, 라비크는 감정에 선을 긋고 거리를 두려 한다. 그들의 관계는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고, 애착과 회피 사이를 끊임없이 오간다. 이는 트라우마가 인간의 감정 회로를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섬세하게 묘사한 것으로, 레마르크는 전쟁으로 인해 감정조차 조각난 인간상을 그려낸다.

개선문은 사랑을 통한 구원을 허락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잠시나마 행복을 경험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각자의 고통과 결핍을 극복하지 못한다. 라비크는 조안을 사랑하지만, 끝까지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조안은 그런 라비크로부터 도망치듯 떠나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죽음은 라비크에게 회복 불가능한 두 번째 상실을 남긴다. 그는 살아남았지만, 그 삶은 더 이상 누구와도 진정으로 연결될 수 없는, ‘감정의 유배지’가 되어버린다.

레마르크는 이 소설에서 사랑을 인간 회복의 수단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사랑조차도 전쟁 이후의 세계에서는 불완전하며, 인간이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기엔 너무 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는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연약함과 연결되며, 라비크는 끝까지 고통스러운 자의식 속에 머문다. 그런 점에서 개선문의 사랑은 현실적이며, 전쟁을 통과한 인간에게 가능한 가장 솔직한 감정 묘사라 할 수 있다.

복잡한 공간 낭만의 도시

개선문이라는 제목이 가리키는 파리의 상징적 구조물은, 이 작품의 중심 배경이자 테마다. 개선문은 나폴레옹의 승리를 기념하는 위대한 조형물이지만, 레마르크는 이 승리의 상징을 망명자의 실패와 고통의 무대로 전환시킨다. 라비크는 이 구조물 아래를 걷고, 그것을 바라보지만, 그는 그 어떤 승리도 경험하지 못한 채, 기억과 상실만을 짊어진 패배자로 남는다.

파리는 이 소설 속에서 복잡한 공간으로 등장한다. 외적으로는 문화, 예술, 자유의 도시이지만, 실제로는 감시와 체포, 추방의 공포가 도사리는 차가운 도시다. 프랑스 당국은 망명자를 법적으로 보호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들의 존재를 은근히 배척하고, 편견을 품는다. 라비크는 도시의 밤을 걷지만, 파리는 그에게 휴식이 아닌 불안의 공간이다. 그는 매일 자신이 다음날 추방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 살아간다.

도시의 밤은 소설 전체에 걸쳐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한다. 라비크는 수술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불 꺼진 창가를 바라보고, 거리의 불빛에 잠식된 조용한 그림자를 따라 걷는다. 이러한 장면은 파리라는 도시가 감정의 리듬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혼자 술을 마시고, 카페에서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과거의 파편을 껴안는다. 파리는 라비크의 감정이 투사된 공간이자, 세계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이 흘려 보내지는 곳이다.

개선문 자체는 소설의 상징으로, ‘전쟁에서 돌아온 자들’을 위한 구조물이지만, 라비크는 돌아갈 곳이 없는 자다. 그는 개선문을 지나지만, 기억 속 과거에 갇혀 있고, 어떤 미래도 허락받지 못한 채 현재에 매몰되어 있다. 이 대비는 이 소설이 추구하는 시간의 정체와 감정의 정지를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파리는 더 이상 ‘낭만의 도시’가 아니라, 인간의 상실을 조용히 감싸는 거대한 무대다.

결론: 존재의 파편을 견디며 살아가는 법

개선문은 단지 전쟁의 참상을 다룬 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전쟁 이후에도 계속되는 인간의 내면 전쟁을 다룬다. 주인공 라비크는 살아남았지만, 그의 삶은 완전하지 않다. 그는 국가도, 이름도, 사랑도, 믿을 수 있는 미래도 없다. 그러나 그는 수술을 계속하고, 사람을 살리고, 자신의 방식으로 윤리적 삶을 유지한다. 이것이 레마르크가 말하는 인간 존엄성의 마지막 불씨다.

이 작품은 인간의 연약함을 비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정직하게 마주하고, 고통과 상처를 끌어안는 방식으로 인간 존재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개선문은 우리에게 묻는다. 사랑할 수 없음에도 사랑하려 하고, 돌아갈 수 없음에도 걷는 사람들, 잊을 수 없음에도 견디는 이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그 답을 라비크의 고요한 눈빛에서, 밤의 파리에서, 그리고 침묵하는 개선문 아래서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