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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경이로운 도시 속 바르셀로나, 근대성의 이중성, 비판적 인식

by anmoklove 2025. 11. 10.

소설 경이로운 도시

에두아르도 멘도사(Eduardo Mendoza)의 장편소설 경이로운 도시(La ciudad de los prodigios)는 1986년에 발표된 이후, 스페인 현대문학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하며 국제적인 찬사를 받았다. 이 작품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의 바르셀로나를 배경으로, 도시의 급격한 변모와 사회경제적 재편성, 계급 갈등, 정치 변동을 생생하게 그려낸 역사적 픽션이자, 한 인물의 야망과 몰락, 권력과 인간성에 대한 탁월한 통찰을 담은 대서사시다. 멘도사는 특유의 위트와 풍자,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문체를 통해, 스페인이라는 나라와 그 속의 인간 군상들을 해부하며, 독자에게 날카로운 역사적 성찰과 문학적 몰입감을 동시에 제공한다.

본문에서는 바르셀로나, 근대성의 이중성, 비판적 인식을 통해 소설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소설 경이로운 도시 속 바르셀로나

경이로운 도시는 두 차례의 세계박람회가 열린 1888년과 1929년 사이, 바르셀로나라는 도시의 격동적인 변화를 무대로 한다. 이 시기는 스페인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산업화와 자본주의의 물결이 본격적으로 밀려들며 도시의 외양과 내면이 동시에 격변하던 시기였다. 멘도사는 이 소설을 통해 단순한 배경 묘사를 넘어, 바르셀로나라는 도시 자체를 하나의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그려낸다. 거대한 도시의 숨결과 변화는 이야기 속 인물들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한 개인의 부상과 몰락이 도시의 변동과 절묘하게 겹쳐진다.

작품의 주인공 오네시모 아라우조(Onésimo Araujo)는 도시로 떠밀려 들어온 이주민 출신으로, 말단 노동자에서 시작해 조직폭력, 부패, 정경유착을 통해 엄청난 권력과 부를 쌓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출신과 한계를 극복하려는 집요한 욕망을 통해 근대 바르셀로나가 부상하는 방식—즉, 자본과 폭력, 정보와 음모, 위선과 기만—을 상징적으로 구현한다. 멘도사는 오네시모의 부상을 통해 도시의 ‘기회’와 동시에 ‘병폐’를 드러내며, 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은폐되는 부조리를 집요하게 파헤친다.

특히 바르셀로나의 도시계획, 확장 정책, 공공 건축물, 상업 지구의 확산은 근대적 화려함을 상징하지만, 동시에 극심한 빈곤층과 소외계층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불균형은 노동운동과 정치적 급진주의의 배경이 되며, 멘도사는 이 모든 과정을 세밀하게 구조화된 서사를 통해 풀어낸다. 즉, 경이로운 도시는 단순한 역사소설이 아니라, 도시라는 공간이 어떻게 근대의 욕망과 폭력을 응축하고 표출하는지를 정밀하게 묘사한 도시소설의 정점이다.

근대성의 이중성 욕망의 결정체

소설의 중심 인물인 오네시모 아라우조는 도시 빈민에서 시작하여 신흥 자본가, 정치 브로커, 그림자 권력자로 거듭나는 인물이다. 그는 타인을 철저히 수단으로 여기며, 권력을 위해 가족, 친구, 연인조차도 희생시킬 수 있는 냉혈한이다. 그러나 멘도사는 그를 단순한 악당이나 냉혹한 자본가로만 묘사하지 않는다. 오네시모는 끊임없이 자신을 창조하고 재구성하는 능동적 인간으로, 근대 사회가 만들어낸 ‘자기 창출적 인간’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출세는 기회와 기만, 폭력과 정보 조작, 대중 조작 등을 통해 이루어지며, 이는 당시 바르셀로나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권력 메커니즘을 상징한다. 그는 변화무쌍한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를 조정하고, 필요하다면 기존의 윤리나 신념을 버리는 유연성과 계산력을 갖춘 인물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멘도사는 오네시모를 통해 ‘근대성의 이중성’을 드러낸다. 즉, 기회와 진보, 자율성과 혁신이 동시에 윤리적 붕괴, 정체성 해체, 인간성 상실을 동반함을 경고한다.

오네시모의 삶은 외적으로는 ‘성공’의 서사처럼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점차 황폐해지고, 인간관계는 단절되며, 최후에는 자신이 만든 질서에 스스로 포섭되어 무력해진다. 그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움직였지만, 결국 자신은 세상의 기계에 종속된 하나의 부속품으로 전락한다. 멘도사는 이러한 아이러니를 통해 ‘성공’의 이면을 해부하며, 오늘날의 독자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성공은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을 위해 움직이는가? 권력은 인간을 어떻게 만드는가?”

오네시모는 한 도시와 한 시대를 상징하는 동시에, 우리 모두 안에 존재할 수 있는 ‘근대적 욕망의 결정체’다. 그를 통해 멘도사는 영웅담도, 도덕극도 아닌, 시대적 인간의 복잡성과 그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실존적 전략을 문학적으로 조명한다.

비판적 인식 문학적 가능성

경이로운 도시는 단순한 사실 기반의 역사소설이 아니다. 멘도사는 이 작품에서 전통적 서사방식에서 탈피해, 다층적 시간 구조, 불확실한 서술자, 풍자와 과장, 우화적 설정 등을 활용하여 사실과 허구, 역사와 이야기의 경계를 흐린다. 이는 단지 문학적 기교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는 누구에 의해, 어떻게 말해지는가?”라는 본질적 질문과 연결된다.

작중 화자는 ‘사실을 기술하려 한다’고 말하면서도, 본인의 기억과 자료의 불확실성, 주관적 해석 가능성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과거의 사건들을 생생히 묘사하지만, 동시에 “이것은 내 추측일 뿐이다”, “이 부분은 누락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의 신뢰도를 스스로 흔든다. 이러한 장치는 독자가 ‘절대적 진실’로 받아들이는 역사 자체가 사실은 선택적이고 구성된 것이라는 비판적 인식을 제공한다.

멘도사의 문체는 진지함과 유머, 냉철한 분석과 풍자적 과장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그는 권력자, 언론인, 지식인, 성직자, 기업인 등 다양한 계층을 캐리커처처럼 희화화하면서, 현실의 복잡한 권력 관계를 날카롭게 풍자한다. 특히 가부장적 질서, 정경유착, 대중 조작, 종교의 위선 등을 조명하면서, 문학이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기보다 한 발짝 물러나 보다 통찰력 있는 시선을 제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경이로운 도시는 이러한 풍자와 메타픽션 전략을 통해, 역사를 단순히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해석하고 다시 쓸 수 있는 문학적 가능성을 제시한다. 멘도사는 독자로 하여금 ‘기록된 역사’의 이면을 보게 하며, 기억과 서사, 진실과 허구 사이의 긴장 관계를 끝없이 반추하게 만든다. 이 작품은 그래서 과거에 대한 회고인 동시에, 오늘날 우리가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를 되묻는 문학적 성찰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경이로운 도시는 바르셀로나라는 공간을 매개로, 개인과 사회, 도시와 인간, 역사와 문학의 교차점을 형상화한 걸작이다. 에두아르도 멘도사는 이 작품을 통해 근대 유럽의 정체성과 문명사적 궤적을 조명하며, 문학이 기억과 해석, 풍자와 비판,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강력하게 제시한다. 경이로운 도시는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며, 독자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살아 있는 고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