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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고리오 영감 속 모순된 구도, 배신의 구조, 사회 실험실

by anmoklove 2025. 11. 13.

소설 고리오 영감

오노레 드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은 1835년 발표 이후,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결정판이자, 인간희극 시리즈에서 가장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겉으로 보기에 한 노인의 인생 말기와 몰락을 그린 비극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프랑스 혁명 이후 새롭게 형성된 사회 질서, 귀족과 부르주아 계급의 갈등, 자본주의적 인간관계의 냉혹함, 부성애의 파괴와 가족의 해체 등 거대한 사회적 주제가 정교하게 배치되어 있다. 발자크는 이 작품에서 고리오라는 한 인물의 삶을 중심에 놓되, 하숙집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다양한 계층과 인물을 교차시킴으로써 19세기 초 파리라는 도시, 더 나아가 프랑스 사회의 축소판을 구현해낸다.

이 글에서는 고리오 영감을 세 가지 핵심 키워드로 분석한다. 첫째, 고리오가 상징하는 '몰락하는 부성애'를 통해, 가족애조차도 자본의 논리에 포섭되는 시대적 비극을 살핀다. 둘째, 젊은 법대생 라스티냐크의 계급 상승 욕망과 도덕적 타락 과정을 통해 사회 진입 장벽의 냉혹함과 기회주의의 생존 전략을 조명한다. 마지막으로, 발자크의 사실주의 문체와 복합적 인물 구성을 중심으로, 고리오 영감이 단순한 서사가 아닌 '사회적 지도'로 기능하는 방식을 고찰한다.

또한 모순된 구도, 배신의 구조, 사회 실험실 라는 세 가지 소제목을 통해 작품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소설 고리오 영감 속 모순된 구도

고리오 영감은 원래 국수 제조업으로 부를 일군 부르주아 출신의 은퇴자다. 그는 부를 통해 딸들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데 인생을 바쳤으며, 특히 딸들이 귀족 사회로 진입하는 것을 가장 큰 성공으로 여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딸들을 부귀영화의 세계로 올려보낸 뒤 완전히 버림받는다. 이 모순된 구도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어떻게 거래되고 폐기되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고리오의 딸들, 아나스타지와 들피느는 아버지를 필요로 했던 시기에는 극진히 따르지만, 자신들의 사회적 위치가 확보된 후에는 그를 부끄러워하고 외면한다. 딸들의 태도 변화는 인간 본성의 타락이라기보다는, 당대 귀족 사회의 계급적 허위의식과 도덕적 해이에 의해 유도된 행동이다. 그들은 부르주아 출신의 아버지가 자신들의 '세련된' 이미지에 손상을 준다고 생각하며, 사회적 체면을 이유로 부정한다. 이것은 부성애에 대한 잔혹한 배신이며, 사랑의 무력화를 상징하는 가장 비극적인 장면이다.

발자크는 고리오의 몰락 과정을 시각적이고 신체적인 묘사를 통해 그려낸다. 건강했던 그의 몸은 점차 수척해지고, 방은 점점 아래층으로 내려가며 하숙집의 가장 낮은 지위로 전락한다. 이 외적 하강은 그의 사회적 몰락과 내적 절망을 상징한다. 그는 딸들이 돈을 요구할 때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어주고, 마침내는 은식기마저 팔아치우며, 자신을 철저히 소모시킨다. 이 과정은 사랑이 아니라, 자본의 논리에 따라 작동하는 ‘소비된 부성애’의 전형이다.

고리오의 죽음 장면은 그 비극의 정점을 이룬다. 그는 딸들이 자신을 위해 장례를 치러주길 바라지만, 결국 그 바람마저 이뤄지지 않는다.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은 하숙집 하인들과 라스티냐크뿐이다. 발자크는 고리오의 죽음을 통해 사랑의 의미가 어떻게 사회적으로 오염되는지를 철저히 보여준다. 이처럼 고리오의 인생은 헌신과 희생으로 일관되었지만,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철저히 무시되는 '쓸모없는 감정'이었다. 작가는 그를 통해 사랑의 근대적 몰락을 상징화한다.

배신의 구조 사회적 성공의 도구

고리오의 몰락과 병렬적으로 배치된 인물은 라스티냐크이다. 그는 시골 출신의 젊은 법대생으로, 사회적으로 성공하고자 파리에 온 인물이다. 그의 등장은 고리오 영감이라는 작품이 단지 비극 서사가 아니라 성장소설로도 기능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 '성장'은 이상이나 도덕을 향한 발전이 아니라, 세속적 성공을 위한 자기 변형의 과정이다. 라스티냐크은 소설 속에서 점차 자신의 내면 윤리를 사회의 요구에 맞춰 조정하며, 결국은 고리오의 죽음 이후 완전히 변모한다.

라스티냐크은 처음에 고리오의 딸 들피느와의 관계를 통해 귀족 사회와 접점을 형성한다. 그는 들피느가 부유한 남편과 갈등을 겪고 있음을 알고, 그녀의 보호자처럼 행동하면서 동시에 그녀를 통해 상류 사회의 사교계로 진입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라스티냐크이 딸과의 관계를 '감정'이 아닌 '전략'으로 인식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는 점점 인간관계를 생존과 상승의 도구로 환원하며, 자신도 모르게 고리오의 딸들이 행했던 배신의 구조를 답습하게 된다.

라스티냐크의 전환점은 보트랭이라는 인물과의 대화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전직 범죄자이자 냉소적인 현실주의자인 보트랭은 라스티냐크에게 ‘도덕을 버리고 수단을 가리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는 세상은 약자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고 말하며, 냉정한 현실 인식을 주입한다. 이 대화를 기점으로, 라스티냐크은 더 이상 도덕적 인간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정서적 거리두기와 감정 절제를 훈련하며, 사회적 성공의 도구로 변화한다.

고리오가 죽은 뒤, 라스티냐크은 파리 시내를 내려다보며 “자, 이제 우리 둘이 대결하자!”라고 외친다. 이는 단순한 다짐이 아니라, 자신의 인간성을 잃는 대신 사회를 정복하겠다는 선언이다. 발자크는 이 장면을 통해 고리오가 상징한 ‘쓸모없는 도덕’이 퇴장하고, ‘현실의 생존 전략’이 부상하는 전환점을 묘사한다. 라스티냐크은 고리오의 유산을 감정적으로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구조적으로 흡수한다. 그는 감정을 포기하고, 성공이라는 냉혹한 목표로 나아간다. 이것은 젊은 세대가 처한 도덕적 딜레마의 극단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사회 실험실 사실주의의 기술적 완성

고리오 영감의 또 다른 특징은 공간 구성과 인물 배열을 통한 사회적 축소판의 형상화다. 작품의 주요 무대는 파리 랑트노 거리의 하숙집이다. 이곳에는 귀족 출신의 몰락자, 신분 상승을 꿈꾸는 청년, 전직 스파이, 노부인 등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이 함께 거주하며, 각자의 욕망과 이중성을 드러낸다. 하숙집은 단지 주거 공간이 아니라,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모순과 긴장이 응축된 '사회 실험실'이다.

발자크는 인물 묘사에서 극도로 사실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고리오의 쇠약해진 몸, 보트랭의 수상한 언행, 들피느의 사치스러운 의상, 라스티냐크의 표정 변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소는 심리의 반영이며 동시에 계급의 상징이다. 이를 통해 그는 독자가 인물의 내면을 단순한 묘사가 아닌, 구조적 해석을 통해 읽어내도록 유도한다. 그의 문장은 길고 복합적이지만, 그 속에는 계급, 권력, 감정, 경제적 구조 등이 밀도 있게 들어 있다.

특히 발자크는 대사보다 서술을 통해 인물의 의도를 암시한다. 예컨대 고리오가 자신의 은식기를 파는 장면에서, 그는 아무런 감정 표현 없이 행동만 묘사하지만, 그 침묵 속에는 부성애의 절망과 체념이 응축되어 있다. 또한 보트랭이 라스티냐크에게 도덕을 버리라고 말할 때, 발자크는 그 말에 따른 라스티냐크의 심리 변화를 묘사함으로써 사회적 현실의 설득력을 실감나게 그려낸다.

이처럼 고리오 영감은 단순한 인간 드라마가 아니라, ‘사회적 구조를 문학으로 재현’한 작품이다. 발자크는 하숙집이라는 제한된 공간 속에서, 개인 욕망과 계급 이동, 가족 관계의 해체, 사회적 위선과 허영이라는 주제를 복합적으로 배치한다. 그는 한 편의 소설을 통해 ‘인간은 사회의 산물’이며, 도덕은 구조에 따라 변형될 수밖에 없음을 문학적으로 증명했다. 이 작품은 단지 고리오라는 인물의 비극이 아니라, 19세기 사회 전체의 도덕적 파산에 대한 정밀한 보고서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고리오 영감은 가족과 사회, 도덕과 생존, 부성애와 배신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 존재의 아이러니를 가장 섬세하게 드러낸 고전이다. 오노레 드 발자크는 이 작품에서 사실주의의 기술적 완성뿐 아니라, 문학이 사회 구조를 어떻게 해석하고 비판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고리오의 눈물은 단지 한 아버지의 슬픔이 아니라, 근대 사회에서 사랑이 기능하지 못하는 조건에 대한 고발이다. 라스티냐크의 선언은 단지 한 청년의 다짐이 아니라, 냉혹한 현실에 적응한 인간의 자기 포기이자 승부의 개시다. 이 모든 것을 포착한 고리오 영감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 사회를 읽어내는 거울이자, 인간 본성에 대한 가장 예리한 질문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