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즈오 이시구로의 대표작 남아 있는 나날(The Remains of the Day)은 20세기 중반 영국을 배경으로 한 은밀하고도 치밀한 내면 독백 소설이다. 전직 귀족가의 집사였던 ‘스티븐스’의 여행과 회상을 통해, 이 작품은 단순한 인물의 인생 이야기에서 벗어나 기억과 진실, 자기기만, 후회, 계급 정체성, 인간 품위란 무엇인가라는 심오한 주제를 다룬다. 이시구로는 독특하게도 폭력적 현실이 아닌 침묵과 부재를 통해 삶의 본질을 파고들며, 영국 전통문학의 우아함과 현대 문학의 실존적 불안을 동시에 담아낸다.
소설 남아 있는 나날 속 품위
소설의 주인공 ‘스티븐스’는 철저하게 품위 있는 집사로 살았다. 그의 삶은 오직 ‘최고의 집사’가 되는 데 바쳐졌다. 그는 ‘집사의 품위’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자세로 주인을 섬기며, 자신보다는 ‘직무’를 우선시하는 것. 겉으로 보기엔 존경스럽고 숭고해 보이는 가치다.
하지만 작가는 이 ‘품위’의 개념이 얼마나 잔혹하고, 인간성을 억압하는 것인지 작품 전반에 걸쳐 집요하게 해부한다.
스티븐스는 다즐링턴 경이라는 영국 귀족을 섬기며, 그의 지시에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복무한다. 주인의 가치관과 정치적 선택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그저 지시된 업무를 수행하는 데만 집중한다.
그런 그에게 가장 극단적인 순간이 찾아오는 장면이 있다. 다즐링턴 경이 나치 지지자들과 교류하며 유대인 하녀들을 해고하라고 명령했을 때, 스티븐스는 아무런 반론 없이 그 지시에 따른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믿지 않더라도, ‘품위 있는 집사’로서 자신의 도덕적 판단을 유보한다. 그리고 나중에 이 일을 회상할 때조차 그는 단호히 “그땐 그렇게 하는 게 옳았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한다.
이시구로는 이 장면을 통해, 개인의 양심보다 직업적 충성이 우선시될 때, 인간은 얼마나 비겁하고 무책임해질 수 있는지를 조명한다. 스티븐스는 결국 자신의 감정, 판단, 가능성을 전부 ‘품위’라는 이름의 이념에 묶여 놓아버렸고, 그 결과 사랑하는 사람도 놓치고, 시대가 바뀌자 정체성마저 잃는다.
그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품위’는 결국 자신을 지탱하던 이상이 아니라, 자신을 철저히 가두는 감옥이었음을 소설은 조용히 드러낸다.
신뢰할 수 없는 화자 회피와 왜곡
남아 있는 나날은 스티븐스의 독백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독자는 온전히 그의 시선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바라보게 된다. 이 구조는 자연스럽게 ‘신뢰할 수 없는 화자(Unreliable Narrator)’의 문제를 제기한다.
스티븐스는 여행을 떠나며, 지나온 삶을 반추한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충실히 집사로서의 의무를 다해왔는지를 자랑스럽게 말하지만, 독자는 점차 그의 말 속에 회피와 왜곡, 무의식적 자기기만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예컨대, 그는 미스 켄턴과의 관계를 ‘업무상 동료’ 그 이상으로 보지 않으려 애쓴다. 그녀의 감정 표현, 교감 시도, 심지어 고백에 가까운 행동조차 “업무에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외면한다. 하지만 노년에 이르러 그녀를 다시 찾아가면서, 우리는 그가 사실은 사랑을 느꼈고, 그것을 외면한 자신에게 깊은 후회를 품고 있음을 알게 된다.
문제는, 이 후회조차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티븐스는 절대 “내가 그녀를 사랑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그녀가 떠났을 때 약간의 허전함이 있었다”, “어쩌면 그녀가 내 곁에 남았다면 더 좋은 삶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할 뿐이다.
이런 간접화법과 애매한 어조는 이시구로가 의도한 서술 전략이다. 인간은 자신의 실수를 정확하게 인식하거나, 뉘우치기보다는 미화하고, 흐리며, 기억을 재구성하는 존재라는 진실을 작품은 절제된 방식으로 보여준다.
이와 더불어, 다즐링턴 경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도 스티븐스의 시선에서 모호하게 처리된다. 다즐링턴 경은 명백히 친나치적 외교 행보를 벌였고, 국제적으로 비판받은 인물이다. 하지만 스티븐스는 이를 끝까지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좋은 주인이었다’, ‘그의 진심은 나라를 위한 것이었다’는 식으로 계속해서 자신이 섬긴 주인을 옹호한다. 이처럼 그의 기억은 사실을 덮고, 자아를 보호하기 위한 방패처럼 작동한다.
이시구로는 말한다. 기억은 진실의 기록이 아니라 자기 보존의 도구다. 스티븐스의 회상은 이 보편적인 인간 심리를 문학적으로 구현한 상징이자, 작가가 독자에게 건네는 도전이다. “당신의 기억은 진실입니까?”
개인의 초상 영국적 정서의 특징
남아 있는 나날은 단지 한 개인의 정체성과 감정만을 탐색하는 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동시에 20세기 중반 영국 귀족 계급의 몰락, 그리고 그 몰락 속에서 역할을 잃어가는 개인의 초상을 함께 담아낸다.
소설 초반, 스티븐스는 미국인 고용주인 파라데이 씨로부터 여행을 권유받는다. 그는 과거 다즐링턴 저택에서의 영광을 회상하며, 이제는 생존을 위한 고용 상태에 놓인 ‘이전 귀족가의 유물’처럼 보인다. 과거에는 국빈과 귀족을 접대하고, 정치의 중심을 오가던 저택이 이제는 관광지로 전락했고, 스티븐스도 더 이상 ‘집사’라기보다는 행사 도우미에 가까운 위치에 있다.
이 변화는 영국 사회의 계급 해체, 제국주의 몰락, 산업자본의 부상이라는 역사적 변동의 상징이다. 이시구로는 스티븐스라는 개인의 몰락을 통해, 그가 믿었던 세계 전체가 붕괴했음을 말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는 여전히 과거의 품위를 지키려 애쓰고, 새 고용주에게도 ‘전통적 방식’을 적용하려 한다. 하지만 시대는 이미 변했다. 존엄이라는 단어는 이제 우스꽝스러운 낡은 미덕으로 보이고, 전통은 현실에 맞지 않는 불편한 이상일 뿐이다.
스티븐스는 자신이 고용주와 나라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해온 삶이, 결국은 아무 의미 없었다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웃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말하며, 절망보다는 체념, 저항보다는 수용을 택한다.
이 장면은 영국적 정서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무너진 제국의 마지막 품위, 실패했지만 체면을 지키려는 태도, 개인적 상실을 공동체적 이상으로 미화하려는 문화. 이시구로는 바로 이 점을 비판하지 않고, 슬프고 아름답게 묘사함으로써 오히려 독자에게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
남아 있는 나날은 아주 조용한 소설이다. 비극적인 죽음도 없고, 로맨틱한 고백도 없다. 그 대신, 이 작품은 삶의 뒤늦은 깨달음, 말하지 못한 감정, 표현되지 못한 사랑, 무너진 세계에 남은 고독한 자의 독백으로 가득 차 있다.
스티븐스는 특별한 사람도, 위대한 영웅도 아니다. 그는 그저 자신의 직무를 다하며 살아온 평범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 평범함 속에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비극이 담겨 있다. - 감정을 숨긴 채 살았던 세월 - 자신의 신념이 옳다고 믿으며 저지른 실수 -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진실 - 돌이킬 수 없는 후회
그가 여행의 끝자락에서 내뱉는 말은 너무도 담담하지만, 독자의 마음에 오래 남는다. “남아 있는 나날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이시구로는 남아 있는 나날을 통해 말한다. 진실은 늦게 도착하고, 후회는 말이 없으며, 인생은 미완의 상태로 끝나기도 한다고. 하지만 그렇기에, 지금 우리가 어떤 신념을 품고, 어떤 감정을 외면하며, 누구를 위해 살고 있는지를 자문하는 일은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