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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다섯째 아이 속 내재된 타자, 인간성, 윤리적 선택의 연속

by anmoklove 2025. 11. 10.

소설 다섯째 아이

도리스 레싱(Doris Lessing)의 소설 다섯째 아이(The Fifth Child)는 출간 이후 많은 논쟁과 해석을 불러일으킨 작품으로, 모성, 가족, 타자성, 공동체의 윤리 문제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게 만든다. 이 짧은 분량의 소설은 길지 않지만, 그 안에 담긴 문제의식은 깊고도 광범위하다. 특히 1980년대 서구 사회가 직면한 가족 해체, 여성의 역할 재정의,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배제, 그리고 인간 본성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파고들면서 이 작품은 단순한 심리소설을 넘어서는 철학적 성격을 띤다. 다섯째 아이는 인간이 구축해온 이념—가족, 사랑, 모성, 사회적 통합—이 실제로는 얼마나 불완전하며, 때로는 폭력적으로 작동하는지를 낱낱이 드러낸다. 이 작품은 작지만 압축적인 문장 속에서 독자의 윤리적 감각을 뒤흔드는 문제작이다. 본문에서는 내재된 타자, 인간성, 윤리적 선택의 연속을 통해 작품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소설 다섯째 아이 속 내재된 타자

작품의 시작은 다소 전형적이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전개된다. 해리엇과 데이비드는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가치관을 지닌 중산층 커플이다. 이들은 급변하는 1960~70년대의 사회적 흐름—개인주의, 성 해방, 여성의 사회 진출, 이혼 증가 등—을 거부하며, ‘예전식의 삶’을 꿈꾼다. 넓은 주택을 구입하고, 많은 자녀를 낳아 대가족을 꾸리며, 공동체적 삶을 지향하는 이들의 모습은 한편으로는 시대에 역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진정한 가치를 구현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들이 꾸미는 삶의 형태는 소박하고 따뜻해 보이지만, 실상은 특정한 사회적 이념과 환상이 만들어낸 구조물이다.

그들이 꾸민 집은 여러 친척과 지인들이 모여드는 사교의 중심지로 기능하며, 끊임없이 ‘행복한 가정’이라는 서사를 강화한다. 하지만 이러한 이상은 극도로 취약하다. 해리엇은 네 명의 자녀를 출산하면서 점차 체력과 정신적으로 소진되고, 데이비드는 점점 가정보다는 회사와 바깥세상에 더 많이 머물게 된다. 특히 주변의 시선과 인정 욕구, 사회적 역할 수행에 집착하는 해리엇의 모습은 가족이라는 구조가 개인에게 얼마나 강력한 억압 기제로 작용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불균형 속에서 다섯째 아이 벤이 태어나며, 그간 유지되던 ‘이상적 가정’의 신화는 산산조각난다. 벤은 어머니의 태내에 있을 때부터 폭력적인 움직임으로 공포를 안기고, 출산 후에는 다른 형제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반응한다. 가족 구성원 누구도 그를 ‘정상적인 아이’로 받아들일 수 없으며, 이방인 혹은 괴물로 간주한다. 벤의 등장은 단순한 ‘장애아의 출현’ 그 이상의 상징이다. 그는 ‘이상적인 가족’이 지닌 취약성과 허상을 폭로하는 존재이며, 외부적 충격이 아니라 내부의 선택과 구조 속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해리엇은 벤을 돌보면서도 끊임없이 모성과 인간성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녀는 모성적 책임감을 느끼면서도, 벤에게 공포와 혐오를 동시에 느낀다. 벤을 사랑해야 한다는 사회적 명령과, 벤을 거부하고 싶은 내면의 욕망이 충돌하면서 해리엇은 점점 고립되어 간다. 가족은 벤을 두려워하고, 친척들은 이 집을 피하게 되며, 데이비드는 점점 집을 떠난다. 즉, 벤은 외부에서 침투한 타자가 아니라, 가족 내부의 허구와 모순이 만들어낸 ‘내재된 타자’로 기능한다. 그의 존재는 가족이라는 제도가 얼마나 억압적이며, 차이를 수용하지 못하는지를 명백하게 보여준다.

인간성 근본적 질문

벤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상징이다. 그는 감정 표현이 거의 없고, 언어 발달이 느리며, 동물적인 힘과 폭력성을 보인다. 이러한 특성은 단지 의학적 장애로 설명되기 어려운, 더 근본적인 비인간성을 암시한다. 그는 고대의 인류, 네안데르탈인의 환생처럼 묘사되며, 가족뿐 아니라 독자에게도 불안과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태어난 그대로일 뿐, 자신이 선택하거나 조작한 것이 없다. 벤의 존재는 우리가 정의하는 ‘인간성’이 얼마나 협소하고 폭력적인 기준에 의존하는지를 반추하게 만든다.

레싱은 벤을 통해 ‘타자’의 개념을 깊이 있게 탐구한다. 그는 사회와 언어, 감성, 윤리의 구조에서 벗어나 있으며, 어떤 공동체도 그를 포용하지 못한다. 벤은 가족 내에서 배척당하고, 학교와 지역 사회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며, 병원과 시설에서는 관리와 격리의 대상으로만 존재한다. 이러한 일관된 배제는 현대 사회가 ‘정상성’이라는 기준 아래 얼마나 많은 존재들을 배제하고, 침묵시키며, 제거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특히 다름을 수용하기보다는 제거하거나 격리하는 방식은 현대 문명이 지닌 폭력성과 연결된다.

벤은 단지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이해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타자가 된 존재다. 그의 존재는 인간의 본성과 문명의 한계, 윤리의 경계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그를 치료하고, 가르치고, 통제하려는 모든 시도는 실패하며, 결국 그는 사회의 경계선 밖으로 밀려난다. 레싱은 이 과정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우리가 진정으로 포용하고자 하는 인간성의 기준은 무엇이며, 누구에게까지 적용되는지를 묻게 한다. 벤은 문명이 숨기고 싶어 했던 야생성과 불편한 진실, 그 자체다.

윤리적 선택의 연속 도덕적 의무와 희생

다섯째 아이에서 가장 깊은 윤리적 갈등은 해리엇의 내면에서 비롯된다. 그녀는 벤을 ‘정상적인 아이’로 만들려는 시도에서 좌절하고, 이후에는 벤을 정신병원에 보내는 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이 결정은 곧 죄책감으로 이어지고, 결국 그녀는 벤을 다시 데려오며, 온전히 자신의 책임으로 그를 돌보기로 결심한다. 이 과정은 단순한 모성 본능이 아니라, 윤리적 선택의 연속이다. 해리엇은 사회의 기준과 가족의 요구, 자신의 감정 사이에서 복잡한 판단을 내려야 했으며, 그 모든 선택이 그녀를 점점 고립시키고 파괴시킨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해리엇의 결정이 결코 ‘해결’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녀는 벤을 다시 받아들임으로써 어떤 구원도 얻지 못하며, 가족은 다시 회복되지 않는다. 데이비드는 더 이상 이전처럼 그녀와 함께하지 않고, 다른 자녀들도 벤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다. 해리엇은 가족과 사회,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점점 멀어지는 존재가 되며, 오직 벤만이 그녀 곁에 남는다. 이 고립은 모성이라는 이름 아래 여성에게 부과된 도덕적 의무와 희생의 서사가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레싱은 다섯째 아이를 통해 공동체 윤리의 이중성을 파헤친다. 벤은 한 인간으로서 살아갈 권리를 지녔지만, 사회는 그를 보호하거나 포용할 의지가 없다. 해리엇만이 그 책임을 떠안으려 하지만, 그녀는 무력하고 외롭다. 이는 현대 사회가 집단적 가치와 연대의 이름 아래 얼마나 개인을 버릴 수 있는지를 비판하는 동시에, 소수자와 타자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독자에게 되묻는 구조다.

결국 벤은 집을 떠나 세상으로 나아가고, 해리엇은 그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이 열린 결말은 희망이나 교훈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레싱은 독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벤과 같은 존재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그를 인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그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다섯째 아이는 이 질문에 답하지 않지만, 우리가 그 질문에서 도망칠 수 없음을 상기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