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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달과 6펜스 속 내면적 충동,타히티에서의 삶, 선택의 대가

by anmoklove 2025. 11. 11.

소설 달과 6펜스

서머싯 몸(W. Somerset Maugham)의 대표작 달과 6펜스(The Moon and Sixpence)는 예술과 삶, 자유와 책임, 문명과 본능 사이의 깊은 균열을 정면으로 응시한 문제작이다. 1919년에 발표된 이 소설은 폴 고갱(Paul Gauguin)의 일생에서 영감을 받아 쓰였지만, 단순한 전기소설에 머물지 않는다.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을 통해 몸은 예술의 본질, 인간의 존재 조건, 그리고 현대 사회의 도덕적 구조를 해부하며, 독자에게 쉬이 판단할 수 없는 인물상을 던진다. 이 소설은 특히 인간이 꿈꾸는 자유란 무엇이며, 예술은 얼마나 잔혹한 대가를 요구하는가에 대한 통렬한 성찰을 담고 있다. 제목이 상징하듯, 우리는 모두 현실의 6펜스를 바라보며 살아가지만, 어떤 이는 고개를 들어 달을 좇는다. 그 둘 사이의 간극이 이 작품의 본질이다.

본문에서는 내면적 충동,타히티에서의 삶, 선택의 대가를 통해 작품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소설 달과 6펜스 속 내면적 충동

소설의 서두에서 스트릭랜드는 평범한 런던 중산층 남성으로 그려진다. 그는 증권 중개인으로 일하며, 아내와 자녀를 둔 모범적인 가장처럼 보인다. 하지만 몸은 이 겉모습의 안정과 평온이 얼마나 위태로운 환상에 불과한지를 극적으로 드러낸다. 스트릭랜드는 어느 날 갑자기 가족에게 아무런 설명도 없이 집을 떠난다. 그는 직장도, 가족도, 명예도 모두 버리고 파리로 향한다. 목적은 단 하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다.

이 극단적인 결단은 당시 독자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으며, 지금 읽어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스트릭랜드는 무책임하고, 냉정하며, 타인의 감정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인물로 보인다. 특히 그의 아내는 실의에 빠지고, 자녀들은 아버지의 부재를 겪는다. 하지만 그는 일말의 후회도 보이지 않는다. 몸은 이 장면을 통해 “예술이란 과연 인간적인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스트릭랜드는 예술이라는 목적을 위해 가족과 도덕, 사회적 규범을 모두 배제하며, 오직 자신의 내면적 충동에 충실하려 한다.

그가 파리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처절하다. 그는 거칠고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살며, 굶주리고 병들지만, 그러한 고통은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의 유일한 관심은 캔버스와 물감, 그리고 그 위에 자신의 세계를 펼치는 것이다. 이 장면에서 몸은 예술을 숭고하게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잔혹하고, 집요하며, 인간성을 압도하는 충동으로 예술을 그려낸다. 스트릭랜드는 천재와 괴물 사이의 경계에 선 인물이며, 우리는 그의 결단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경외하게 된다. 그는 우리 모두가 가슴 깊이 품고 있지만 결코 실현할 수 없는 자유를 실현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스트릭랜드는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면서도, 그 도움을 잔인하게 배신한다. 그는 함께 살던 디르크 스토르브와 그의 아내를 파멸로 몰고 가며, 결국 디르크의 아내 블랑쉬를 자살하게 만든다. 이 사건은 스트릭랜드의 극단적인 비도덕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가 도덕이라는 규범의 바깥에서 사는 인물임을 상징한다. 그는 인간적인 온정이나 죄책감 없이, 오직 예술이라는 거대한 불꽃에 모든 것을 태워버린다. 그에게 있어 인간관계는 목적을 위한 수단도 아니며, 그냥 무의미한 것이다.

타히티에서의 삶 자아 실현의 완성

스트릭랜드의 여정은 파리를 거쳐 남태평양의 외딴 섬 타히티로 향한다. 타히티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이 소설의 결정적 전환점이다. 그곳은 문명의 질서와 규범에서 벗어난, 보다 본원적이고 원시적인 삶의 공간이다. 스트릭랜드는 타히티에서 모든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해방된 채, 그림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발견한다. 그는 이방인이지만, 동시에 그 어떤 곳보다 자신의 본질에 가까워질 수 있는 장소에 도달한 것이다.

타히티에서의 그의 삶은 외부의 시선에서는 초라하고 궁핍해 보이지만, 스트릭랜드는 그곳에서 진정한 예술가로서의 자신을 완성한다. 그는 아타라는 현지 여성과 함께 살며, 마을 사람들과도 교류하지 않고, 외부와 단절된 채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그가 병으로 시력을 잃고 죽음을 앞둔 순간까지 몰두했던 벽화는, 그가 평생을 통해 추구한 예술의 정수를 담고 있는 걸작으로 묘사된다.

서머싯 몸은 이 벽화의 실체를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대신, 주변 인물들의 반응과 묘사를 통해 독자가 그 예술의 위대함을 상상하도록 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벽화는 스트릭랜드의 사망 후, 그의 유언에 따라 집과 함께 불태워진다. 이는 예술의 본질이 ‘남기는 것’이 아니라, 창조의 순간 그 자체에 있다는 급진적인 선언이다. 스트릭랜드에게 예술은 명성이나 기록을 위한 것이 아니며,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표현의 충동’이자 ‘내면의 완결’을 위한 것이었다.

이와 같이 타히티에서의 삶은 문명과의 절연, 그리고 자아 실현의 완성이라는 측면에서 결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몸은 타히티를 이상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섬은 인간의 본능과 자연의 힘이 그대로 살아 있는 공간이며, 스트릭랜드는 그러한 공간에서야 비로소 자신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었다. 그는 외부의 기대나 평가를 필요로 하지 않았으며, 오직 스스로의 기준에 따라 살아간다. 이는 서구 문명이 강조한 규범, 도덕, 책임이라는 개념과 정면으로 충돌하며, 예술가라는 존재의 외로움과 위태로움을 동시에 보여준다.

삶의 현실 선택의 대가

달과 6펜스의 가장 큰 미덕은 독자에게 명확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소설은 선과 악, 성공과 실패, 예술과 비인간성이라는 경계를 흐리며, 우리가 갖고 있는 기준들이 얼마나 불완전한지를 드러낸다. 찰스 스트릭랜드는 사회의 시선으로 보면 결코 모범적이거나 존경받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가족을 버리고, 타인을 해치며, 자신의 욕망에만 충실한 이기주의자로 보인다. 그러나 그가 남긴 예술은 누가 봐도 위대하며, 순수하다. 이 아이러니가 바로 작품의 핵심이다.

스트릭랜드의 인생은 예술의 본질에 대한 극단적인 진술이다. 그는 타인의 인정이나 경제적 성공, 명성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의 삶은 오직 예술적 진실을 추구하는 데 바쳐졌고, 그는 그 목표에 도달했다. 그렇다면 그의 이기적이고 비윤리적인 선택들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서머싯 몸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독자에게 남긴다. 그는 평가자가 아니라 관찰자로 남으며,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의 복잡한 내면과 존재의 다층적 구조를 보여준다.

이 소설의 제목, 달과 6펜스는 매우 상징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6펜스, 즉 생존과 실용, 안정, 체면이라는 삶의 현실에 머무른다. 그러나 달을 바라보는 사람은, 비록 발밑의 6펜스를 놓치더라도, 이상과 진실, 본질을 추구한다. 스트릭랜드는 6펜스를 철저히 거부하고 달만을 좇은 인물이다. 그는 사회로부터 비난받고 고립되었지만, 끝내 자기만의 진실을 완성했다. 이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니며, 그 선택의 대가는 너무도 크다.

서머싯 몸은 이 작품을 통해 단지 예술가의 삶을 조명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만의 진실을 향해 나아갈 때 감내해야 하는 고독과 희생, 그리고 자유의 대가를 이야기한다. 달과 6펜스는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무엇을 좇으며 살아가는가? 우리는 과연 달을 바라볼 수 있는 용기를 가졌는가? 스트릭랜드는 결코 이상적인 인물은 아니지만, 그를 통해 우리는 삶과 예술의 본질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