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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등대로 속 의식의 흐름, 창조의 주체, 존재의 지속

by anmoklove 2025. 11. 11.

소설 등대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등대로(To the Lighthouse)는 1927년 발표 이후 현대 문학사에서 가장 실험적이고 영향력 있는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아왔다. 울프는 이 작품을 통해 기존의 전통적 서사 구조와 인물 묘사 방식에서 벗어나, 인간 의식의 흐름, 기억과 시간, 존재의 본질을 탐색한다. 단순한 가족 방문이라는 줄거리 속에서 울프는 시공간을 압축하고, 내면 세계를 확장하며, 여성성과 예술, 죽음과 유한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시도한다. 이 작품은 겉보기에 조용한 이야기이지만, 그 내면에는 인간 존재의 핵심을 향한 문학적 실험과 철학적 탐구가 응축되어 있다. 등대로는 단순히 한 가정의 이야기라기보다,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고 관계를 맺는 방식 자체에 대한 서사적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본문에서는 의식의 흐름, 창조의 주체, 존재의 지속을 통해 작품을 알아보고자 한다.

소설 등대로 속 의식의 흐름

등대로는 총 세 개의 부분으로 나뉜다: ‘창문을 통해’, ‘시간이 흐른다’, ‘등대로’. 이 세 부분은 시간의 직선적 흐름을 따르지 않으며, 특히 중심부인 ‘시간이 흐른다’에서는 10년이라는 세월이 단 몇 페이지로 축약된다. 울프는 전통적인 플롯 중심의 서사를 거부하고, 대신 인물들의 내면 의식의 흐름을 따라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와 함께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 기법을 대표하는 문학적 성과로 평가받는다.

‘창문을 통해’에서 우리는 램지 가족이 여름 별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장면을 보게 된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등장인물들이 그 순간을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지, 서로에 대해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는지이다. 울프는 각 인물의 내면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동일한 상황에 대한 서로 다른 감정과 시선을 중첩시킨다. 예컨대, 제임스가 느끼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 릴리 브리스코가 느끼는 예술에 대한 갈망, 미세스 램지가 품고 있는 가족에 대한 연민과 의무감은 동일한 공간 안에서도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시간이 흐른다’는 서사의 중심이자 실험적 정점이다. 여기서 울프는 건물의 붕괴와 자연의 흐름, 그리고 전쟁과 죽음의 소식을 거의 무심한 톤으로 서술한다. 중요한 인물들의 사망—미세스 램지의 죽음, 앤드류의 전사, 프루의 병사—는 간결하게 처리되며, 시간은 인간의 서사를 압도하는 자연의 힘으로 묘사된다. 이는 인간 삶의 유한성과 허무, 그리고 기억의 작동 방식을 환기시키는 장치로 작용한다.

마지막 부분인 ‘등대로’에서 시간은 다시 현재로 돌아오며, 램지 가족은 10년 만에 등대로 향하는 여행을 떠난다. 여기서 제임스와 미스터 램지 사이의 긴장과 화해, 릴리 브리스코의 예술적 완성은 이야기의 결말을 이루지만, 그것은 전통적인 의미의 결말이 아니다. 울프는 사건의 해결보다는, 그 순간의 감정과 인식이 어떻게 변화하고 축적되는지를 통해 인물의 변화를 보여준다. 등대로는 이러한 방식으로 시간, 기억, 의식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서사 구조를 창조해낸 작품이다.

창조의 주체 자기만의 목소리

등대로는 표면적으로는 램지 가족의 이야기이지만, 그 이면에서는 여성의 삶과 역할, 예술과 창조의 가능성에 대한 깊은 사유가 전개된다. 특히 미세스 램지와 릴리 브리스코는 대조적인 여성상으로 등장하며, 울프의 페미니즘적 문제의식이 투영된 인물들이다. 미세스 램지는 전통적인 빅토리아식 여성상—아내, 어머니, 가정의 중심—을 대표한다. 그녀는 모든 이의 감정을 돌보고, 분위기를 조율하며,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면서 타인의 안녕을 우선시하는 인물이다. 그녀의 존재는 가정 내 질서와 안정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자아의 억압과 희생의 결과이기도 하다.

반면 릴리 브리스코는 독신이며 화가로, 미세스 램지와는 대조되는 여성의 삶을 살아간다. 그녀는 남성 중심적 세계에서 자신의 예술적 정체성을 지키려 애쓰며, 사회적 역할이나 결혼에 얽매이지 않으려 한다.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의 그림을 완성하려 하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다. 이는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예술적 존재를 어떻게 정당화하고 실현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내포한다. 그녀의 작품은 곧 여성 작가로서의 자기 표현이며, 존재의 의미를 찾는 실존적 시도이다.

소설의 말미에서 릴리는 마침내 자신의 그림을 완성하며, 이는 단순한 창작의 성공이 아니라, 여성 예술가로서의 자기 확립을 상징한다. 그녀는 미세스 램지의 죽음을 통해 그 삶의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고, 자신의 예술적 여정에 그것을 통합한다. 이 순간은 울프가 예술과 여성성을 어떻게 연결시키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장면이다. 울프는 릴리를 통해, 여성도 창조의 주체가 될 수 있으며, 가부장제의 틀을 넘어서 자기만의 목소리를 가질 수 있음을 선언한다. 등대로는 여성 작가로서의 울프 자신의 선언문이자, 여성의 내면 세계와 창조성을 탐구한 작품이다.

존재의 지속 내면의 성장을 향한 여정

등대는 소설 전체의 구조를 연결하는 상징물이다. 그것은 제임스에게는 유년의 열망과 좌절을 상징하고, 미스터 램지에게는 철학적 탐색의 대상이며, 미세스 램지에게는 가족의 꿈과 기대의 결집체다. 등대는 실제 장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각 인물의 내면적 갈망을 반영하는 메타포로 기능한다. 울프는 이 등대를 중심으로 인물들의 관계와 기억, 감정의 축을 배치하며, 독자가 그것을 하나의 고정된 의미로 환원하지 못하게 한다.

울프의 문장은 사건보다는 감정의 흐름, 기억의 파편, 의식의 미세한 흔들림에 초점을 맞춘다. 그녀는 내면의 목소리들을 병치시키며, 하나의 진실이 아니라 복수의 시선과 감정이 교차하는 서사를 구성한다. 이는 곧 존재라는 것이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구성되는 것임을 드러낸다. 등대로에서의 존재는 정적인 것이 아니라, 기억을 통해 지속되며, 관계 속에서 의미화된다. 미세스 램지가 죽은 후에도 그녀의 존재는 가족과 릴리의 기억 속에서 살아 있으며, 이는 울프가 말하는 ‘존재의 지속’ 개념과도 맞닿는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제임스가 등대에 도착하고, 릴리가 그림을 완성하는 장면은 이중적인 완결을 제공한다. 제임스는 어릴 적 이루지 못했던 여행을 완성하면서, 아버지와의 갈등과 감정을 어느 정도 해소하고, 자신의 내면에서 일종의 성장과 화해를 경험한다. 릴리는 그녀의 예술적 고민에 하나의 형태를 부여하면서, 존재의 무상함 속에서도 표현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확인한다. 이는 등대로라는 작품이 단지 소멸에 대한 묵상이 아니라, 기억과 예술을 통해 존재를 지속시키는 가능성에 대한 탐구라는 점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등대로는 전통적 서사 방식을 해체하고, 인간 존재의 내면과 시간을 새로운 방식으로 탐색한 문학사적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울프는 이 작품을 통해 여성성과 예술, 기억과 존재, 시간과 무상성이라는 근원적인 문제들을 다층적으로 엮어낸다. 단순히 내용이 아닌 형식과 언어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은, 읽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내면의 등대를 바라보게 한다. 등대로는 결국 외부의 목표가 아니라, 내면의 성장을 향한 여정이며, 그 끝에는 어쩌면 ‘완성’이 아닌 ‘지속’만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