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가시노 게이고의 라플라스의 마녀는 전통적인 추리소설의 틀을 뛰어넘는 실험적 구성과 과학 철학적 사유를 결합한 작품으로, 현대 일본 사회에 대한 은유와 인간 자유의지의 본질에 대한 깊은 질문을 동시에 던진다. 단순한 살인사건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곧 ‘예측 가능한 인간 행동’, ‘자연현상의 통제 가능성’, ‘초능력의 윤리적 문제’로 확장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작품에서 과학과 마법, 예측과 혼돈, 인간과 시스템이라는 이분법을 철저히 해체하며, 독자로 하여금 "우리는 과연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마주하게 만든다.
라플라스의 마녀라는 제목 자체가 함축적이다. ‘라플라스의 악마’는 프랑스 수학자 피에르시몽 라플라스가 제안한 가상의 존재로, 우주의 모든 원자 위치와 운동량을 알 수 있다면, 과거와 미래를 모두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완전한 결정론적 세계관이다. 이 작품에서 '마녀'는 이런 세계를 실현할 수 있는 ‘능력자’, 다시 말해 인간의 선택과 우연조차도 예측할 수 있는 자로 등장한다. 히가시노는 이 마녀를 통해 결정론적 세계관의 무서움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윤리적, 인간학적 딜레마를 날카롭게 파고든다. 본문에서는 이 작품을 세 가지 축으로 분석한다. 행동 예측, 예외 없는 존재, 예측 불가능성 이다.
소설 라플라스의 마녀 속 행동 예측
작품의 출발점은 자연현상, 정확히는 온천가스에 의한 사고다. 연속적으로 벌어지는 의문스러운 사망 사건에 대해 주인공 아오에 교수는 환경 과학적 접근으로 분석을 시작한다. 그는 가스 분출, 기압, 기온, 습도 등 외부 조건을 통해 인간이 특정 장소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상황’을 설명한다. 이 접근은 마치 라플라스가 말한 결정론적 세계의 메타포와도 같다. 인간의 죽음마저 자연현상에 의해 결정된다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히가시노는 이 설정을 바탕으로 ‘행동 예측’이라는 주제를 끌어올린다. 특히 히나라는 인물은 인간의 심리와 외부 환경을 통해 상대의 반응과 행동을 거의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다. 이 능력은 물리 법칙처럼 작동하며, 인물들은 점점 그녀의 ‘마법’에 이끌린다. 그러나 작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능력이 단순한 추리나 통찰이 아니라 ‘과학의 확장’이라며, 라플라스적 사고와 연결시킨다. 그녀는 악마이자 신이며, 동시에 과학의 극단이다.
작품의 핵심 갈등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인간의 모든 행동이 예측 가능하다면, 인간은 더 이상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며, ‘선택’이라는 행위 자체가 의미를 잃는다. 히가시노는 라플라스의 악마가 현실화되는 사회에서 인간이 어떤 감정적·도덕적 혼란을 겪게 되는지를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우리는 정말 자유롭게 살아가는가? 아니면 우리가 내린 모든 결정은 이미 조건에 의해 결정되어 있었는가? 이 작품은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를 빌려, 철학적 사유를 소설 속으로 끌어들인다.
예외 없는 존재 윤리적 파탄의 세계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히나다. 그녀는 인간의 감정, 상황, 행동을 마치 물리 공식처럼 예측할 수 있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녀는 '마녀'라 불리지만, 실질적으로는 ‘완전한 통계적 통찰력’을 가진 인간이다. 히가시노는 히나라는 인물을 통해 ‘지식이 권력이 되는 사회’에서 개인이 어떻게 도구화될 수 있는지를 고발한다.
히나는 어릴 때부터 연구자들의 실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녀의 능력은 의학, 심리학, 군사적 목적에까지 이용되려 하며, 국가와 과학 시스템은 그녀의 인격보다는 능력에만 집중한다. 이러한 구조는 오늘날 기술 사회의 윤리 문제를 반영한다. 인공지능, 유전자 편집, 행동예측 알고리즘이 발전하는 지금, 인간은 과연 기술로부터 보호받고 있는가, 아니면 기술에 의해 판단받고 있는가? 히나는 이러한 질문의 은유적 화신이다.
히가시노는 히나가 ‘도구’로 쓰일 때 발생하는 고통과 인간성의 파괴를 매우 절제된 방식으로 묘사한다. 그녀는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지만, 작품 후반부로 갈수록 독자는 그녀의 외로움, 공허함, 인간으로서의 갈망을 감지하게 된다. 그녀는 예측할 수 없는 세계를 원한다. 혼돈과 우연, 실패와 실수를 통해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인간의 세계를 꿈꾼다. 이것이 역설적이게도, 그녀가 가장 인간적인 인물로 느껴지는 이유다.
히가시노는 히나와 대척점에 있는 과학자들을 통해 통제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여준다. 모든 것을 측정하고, 예측하고, 통제하려는 사회는 효율성을 높일 수는 있지만, 인간을 ‘예외 없는 존재’로 만들며, 다양성과 우연성을 말살한다. 라플라스의 마녀가 실현된 세계는 바로 이러한 윤리적 파탄의 세계이며, 이는 미래 사회의 거울이자, 기술적 결정론의 경고이다.
예측 불가능성 날카로운 경고
라플라스의 마녀는 표면적으로는 살인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미스터리 구조를 따른다. 그러나 작품은 전통적인 ‘범인은 누구인가’에서 벗어나, ‘왜 인간은 범죄를 저지르는가’, ‘왜 우리는 예측하지 못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독자를 이끈다. 이는 일반적인 트릭 중심의 추리소설과는 전혀 다른 접근이며, 히가시노의 작가적 야심이 반영된 부분이다.
작품 속 살인사건은 사실상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살인이라는 사건이 인간 감정의 격변, 억압, 해방 욕구의 산물임을 드러내는 장치로 쓰인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는 흐려지고, 모두가 ‘예측 가능성’이라는 통제 속에서 소외되어 간다. 특히 후반부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회상과 감정 묘사는, 인간이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인지를 부각시키며, 예측 자체가 얼마나 오만한 작업인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히가시노는 이 작품에서 ‘예측 불가능성’을 옹호한다. 인간은 기계처럼 정확히 반응하지 않으며, 감정, 직관, 상처, 기억 같은 비합리적 요소들이 행동을 결정짓는다. 라플라스의 악마가 존재한다고 해도, 인간은 여전히 그 시스템의 오류를 만들어내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바로 그 오류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히나는 마지막에 이른다. “나는 더 이상 모든 걸 알고 싶지 않다.” 이 말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선언이다. 예측하지 못하기에, 인간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고, 그러므로 자유롭다.
결국 라플라스의 마녀는 기술이 모든 것을 측정하고, 예측하고, 통제하려는 현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경고이다. 동시에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복잡하고, 예외적이며, 때로는 무질서하고 불완전한지를 찬미하는 문학적 선언이기도 하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작품을 통해 장르의 경계를 뛰어넘고, 미스터리의 외형 속에 철학적 깊이를 담아냈다. 그리고 독자에게 묻는다. “당신의 선택은 정말 당신의 것이었는가?” 이 질문은 소설이 끝난 뒤에도, 우리 마음속에서 오래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