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잉에보르크 바흐만의 말리나는 1971년 발표된 이후, 여성 문학과 실존주의 소설, 언어비평적 텍스트로서 문학사에서 깊은 흔적을 남긴 작품이다. 이 소설은 명확한 서사를 따르지 않고, ‘나’라는 여성 화자의 의식 흐름과 심리적 단면, 그리고 그녀의 내면에 자리 잡은 폭력과 분열을 복잡하게 구성해낸다. 말리나는 단지 한 여성이 겪는 사랑과 고통, 상실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이 작품은 언어와 정체성, 남성 중심 사회에서의 여성의 존재 방식, 기억과 무의식에 대한 문학적 실험이라 할 수 있다. 전통적 소설 형식과 문장 구조를 해체하고, 단절되고 파열된 내면의 리듬을 따라가며 독자를 끊임없이 불안과 몰입의 경계에 서게 만든다. 바흐만은 말리나를 통해 여성의 실존적 고통을 그려내는 동시에, 언어와 폭력의 관계를 드러내는 치밀한 심리적 해부를 시도했다. 본문에서는 이 작품을 언어의 폭력성, 여성 주체의 정체성, 기억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분석한다.
소설 말리나 속 언어의 폭력성
말리나는 이름조차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나’라는 여성 화자가 주인공이다. 그녀는 글을 쓰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글을 통해 자신을 파괴해 나가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녀는 연인 이반과의 관계를 통해 사랑의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하지만, 그 사랑은 실현될 수 없는 이상으로 남는다. 그녀는 끊임없이 말을 하고 글을 쓰지만, 그 언어는 자신을 구제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녀는 말할 수 없기에 말하고, 표현할 수 없기에 침묵하며, 그 침묵 속에서 존재의 가장 깊은 균열을 느낀다.
바흐만은 이 작품을 통해 언어의 폭력성을 비판적으로 드러낸다. 여성 화자는 말을 하지만, 그것은 남성의 문법, 남성의 문장, 남성의 구조 안에서만 가능하다. 그녀의 목소리는 진정한 자율적 언어가 아니다. 이반과의 대화, 말리나와의 대화에서 그녀는 자신이 구조적으로 ‘답할 수 없음’을 반복적으로 경험한다. 그녀는 어떤 방식으로도 온전히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며, 이는 단지 내면의 문제라기보다 구조적 억압의 문제이다. 말리나 속의 화자는 "내 언어는 나의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녀는 언어를 빌려 존재하지만, 그 언어가 자신을 규정하고 억압하는 틀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서사의 틀을 거부하며, ‘말할 수 없음’이라는 주제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다. 문장들은 단절되고 중복되며, 주어는 불분명하고, 서사의 논리는 종종 순서를 잃는다. 바흐만은 이를 통해 여성의 내면이 남성적 이성의 문법으로는 포착될 수 없음을, 그 구조를 파괴함으로써만 진정한 말하기가 가능함을 보여준다. 이러한 의미에서 말리나는 ‘언어에 대한 전복적 텍스트’이며, 동시에 ‘여성의 말하기가 가능한 조건’을 탐색하는 문학적 실험장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당시 독일어권 문학에서 전례 없던 접근이었으며, 이후 수많은 여성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여성 주체의 정체성 말하지 않는 존재
작품 속에서 말리나는 ‘나’와 가장 가까운 인물이자 동시에 가장 먼 타자이다. 그는 논리적이고 질서 정연하며, ‘나’의 감정과 혼란을 수용하거나 통제하려 한다. 말리나는 때때로 보호자처럼, 때로는 정신과 의사처럼, 혹은 감정 없는 남성 사회의 상징처럼 등장한다. 그는 감정을 말로 분석하고 정리하며, 그녀의 불안과 광기를 언어로 해석하고 틀 속에 가둔다. 이런 점에서 말리나는 여성 화자의 내면에 존재하는 ‘내면화된 남성 권력’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이반이 ‘욕망의 대상’이라면, 말리나는 ‘이성의 감시자’다. 이 둘 사이에서 여성 화자는 끊임없이 갈등하며, 자신의 자아는 두 인물 사이에서 균열되고 파편화된다. 그녀는 이반에게 감정을 느끼지만, 그것은 언제나 거절당하고 무시당하며, 그 결과 자아는 상실로 향한다. 반면 말리나는 감정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한 채 논리로만 접근하며, 그 역시 그녀를 온전히 수용하지 못한다. 이 두 관계는 결국 그녀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분열의 외화이며, 그녀는 어느 쪽에서도 안정을 찾지 못한다.
바흐만은 이러한 인물 구성을 통해, 여성 주체의 정체성이 어떻게 사회 구조 안에서 형성되고 파괴되는지를 보여준다. 말리나는 단지 등장인물이 아니라, ‘나’의 또 다른 자아일 수 있다. 그는 논리와 이성, 침묵과 절제를 상징하며, 감정의 격류에 휩쓸리는 ‘나’와 대립하는 내적 존재다. 결국 이 소설은 하나의 자아가 자신의 내면에서 두 가지 상반된 정체성 사이에서 균열되고 무너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분열은 여성에게 요구되는 이중적인 사회적 역할, 즉 감정적 존재이자 동시에 이성적 통제자라는 모순적 요구에서 비롯된다.
작품 말미에서 여성 화자가 완전히 사라지고, 말리나만이 남는 결말은 이러한 내면의 전복을 가장 극단적으로 상징화한다. 그녀는 ‘벽장 속으로 들어가 사라진다.’ 이것은 단지 상징이 아니다. 이는 여성의 언어, 존재, 정체성이 이 세계에서 더 이상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침묵 속으로 퇴장한다는 절망의 선언이다. 말리나는 살아남지만, 말하지 않는 존재로 남는다. 여성은 끝내 말할 수 없는 존재로 사라지는 것이다. 바흐만은 이를 통해 여성 주체의 근원적인 상실과, 그것이 어떻게 사회 구조와 언어 체계 속에서 발생하는지를 집요하게 형상화한다.
기억 새로운 여성 주체의 언어와 감각
말리나의 중심에는 끔찍한 기억, 특히 아버지로 상징되는 남성 권력의 폭력적 흔적이 자리 잡고 있다. 화자는 반복적으로 꿈속에서 전쟁, 학대, 폭력, 억압을 경험하며, 이는 종종 비현실적인 형식으로 묘사된다. 그녀의 언어는 이 폭력을 직시하지 못하고, 상징과 파편, 이미지의 형태로 우회하며 표현된다. 바흐만은 이 작품을 통해 트라우마의 언어, 무의식의 문법, 기억의 기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철저히 탐구한다.
이러한 기억은 단순한 개인의 고통이 아니라, 역사적이고 집단적인 여성 억압의 상징이다. 아버지는 단지 화자의 가족 구성원이 아니라, 전체 남성 중심 세계의 질서를 상징하는 존재이며, 그의 존재는 계속해서 화자의 내면을 짓누른다. 이 기억은 화자가 현실에서 감정적으로 안정되지 못하게 만드는 중심적인 요인이며, 말리나라는 텍스트 전체를 통틀어 가장 깊은 상처의 원인이기도 하다.
작품에서 꿈의 묘사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꿈은 논리적 서사에서 벗어나 무의식의 진실을 드러내는 통로이며, 화자가 직접적으로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이다. 특히 ‘아버지와의 대면’ 장면은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매번 새로운 형태로 그녀를 파괴한다. 이러한 꿈의 서사는 프로이트적 해석뿐 아니라, 당대 여성들이 겪은 억압적 기억과도 연결된다. 꿈은 말할 수 없는 현실의 왜곡된 반영이며, 이 작품은 바로 그 꿈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면서 여성의 고통을 형상화한다.
바흐만은 이 텍스트를 통해 문학이 단지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체가 아니라, 억압된 기억을 호출하고, 말할 수 없는 것을 구성하는 공간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한다. 말리나는 기억을 통해 쓰여진다. 그리고 이 기억은 개인의 것이자 집단의 것이며, 여성의 경험이라는 이름 아래 끊임없이 반복되고 재생산된다. 문학은 이 고통의 언어를 받아들이고, 그 언어를 통해 치유 혹은 해체를 가능케 하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그러나 바흐만은 단순한 치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녀는 텍스트를 끝내 회복으로 이끌지 않고, 파열과 소멸의 문턱에서 멈추게 한다. 이것이 바로 말리나가 고통스럽지만 위대한 이유다.
결론적으로 말리나는 여성의 존재론적 고통, 언어의 억압성, 기억의 파괴적 힘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실험적이면서도 심오한 작품이다. 잉에보르크 바흐만은 이 소설을 통해, 전통적인 문학 구조를 부정하고, 새로운 여성 주체의 언어와 감각을 탐색한다. 말리나는 독자에게 쉬운 이해를 요구하지 않으며, 오히려 끊임없는 해석과 사유를 자극한다. 이 작품은 여성이 쓰는 글이 어떻게 기존의 문학 제도를 해체하고, 전복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선언문이자, 언어로서의 비명을 남긴 기록이다. 바흐만은 말리나를 통해 '말하지 못한 여성의 역사'를 말했고, 그 말하기 자체가 하나의 혁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