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셸 우엘벡의 소설 복종은 프랑스 문학계에서 가장 논쟁적인 작품 중 하나다. 이 소설은 2022년 프랑스를 배경으로, 이슬람계 정당이 합법적으로 정권을 잡게 되는 과정을 그린 정치 풍자이자, 중년 남성 지식인의 실존적 허무와 무기력을 담은 사회 소설이다. 우엘벡 특유의 도발적인 시선과 냉소적 언어는 현대 유럽 문명의 피로, 정체성의 위기, 그리고 인간 개인의 방향 상실을 정면에서 파고든다. 본문에서는 세 가지 관점—주인공의 실존적 무기력, 이슬람 정권에 대한 정치적 상상력, 문명 피로에 대한 통찰—으로 이 작품을 분석한다.
소설 복종 속 무감각한 개인
복종의 주인공 프랑수아는 40대 후반의 문학 교수로, 19세기 프랑스 작가 J.K. 위스망스를 연구하는 인물이다. 그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지식인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지만, 그 삶에 대한 회의와 권태에 빠져 있다. 프랑수아는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할 명확한 가치나 목적 없이 무기력한 일상을 반복하며, 주변 인물과의 관계에서도 깊은 소통을 거부한다. 그는 젊은 여학생들과의 피상적인 관계를 통해 일시적인 욕망을 채울 뿐, 진정한 관계를 맺지도 않고, 미래에 대한 의지도 갖고 있지 않다.
우엘벡은 이 인물을 통해 현대 유럽 지식인의 정신적 공허와 도덕적 무기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프랑수아는 자신의 삶에 아무런 의미도 부여하지 못하고, 종교, 정치, 사랑, 철학 등 모든 차원에서 방관자로 존재한다. 그는 진정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느슨한 죽음을 살아가고 있는 존재이다. 이러한 인물 설정은 사르트르, 카뮈 같은 실존주의 문학에서 볼 수 있는 허무주의적 주인공과 맥을 같이 하면서도, 우엘벡은 그것을 21세기 자본주의 후기 사회로 옮겨와 더욱 냉소적이고 탈정치적인 방식으로 묘사한다.
흥미로운 점은 프랑수아가 연구하는 위스망스 역시 회의주의자이며, 세속적 쾌락과 신앙 사이에서 방황하다 결국 수도원으로 향했던 인물이라는 점이다. 이 선택은 프랑수아의 내면 여정과 평행 구조를 이루며, 종교적 신념이 아닌 사회적 안정과 안락함을 위한 ‘복종’으로 이어진다. 이는 프랑수아가 최종적으로 이슬람 체제 아래서 복종을 선택하게 되는 장면에서 절정을 이룬다. 주인공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체제 변화에 순응하며 존재의 의미를 ‘위탁’해버린다.
이처럼 복종은 단지 정치적 메시지나 문명 비판을 넘어서, 인간 존재의 실존적 피로와 주체성의 소멸이라는 심층 주제를 담고 있다. 프랑수아는 우엘벡 자신이 자주 묘사하는 ‘무감각한 개인’의 전형이며, 이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독자에게도 낯설지 않은 자화상이 된다.
정치적 가능성 서구 전체의 정체성 해체
복종이 출간되었을 때, 가장 큰 논란을 일으킨 지점은 소설 속 이슬람 정권의 집권 서사였다. 2022년 프랑스를 배경으로 설정된 이 소설은, 이슬람형 공화당이라는 정당이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FN)과의 대결에서 중도 좌파 및 우파 정당의 지지를 받으며 연립 정권을 구성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이는 현실 정치에서 이민 문제와 이슬람 소수자 이슈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프랑스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우엘벡은 소설을 통해 단순히 ‘이슬람에 대한 비판’이나 ‘극우적 경고’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시스템 자체의 유연성과 허약함, 그리고 프랑스 엘리트 지식인 계층의 실질적 무관심을 드러내고자 한다. 정치적 전환은 혁명이 아닌 합법적 선거 절차를 통해 이루어지며, 이는 우엘벡이 얼마나 냉철하게 정치적 가능성을 계산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신임 대통령 벤 아베스는 폭력적인 독재자가 아니라, 고도로 합리적이며 타협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이는 서구 자유주의의 이념적 틀이 내부에서부터 자발적 전환을 맞이할 수 있다는 문제 제기이기도 하다.
이슬람 정권 하에서 도입되는 제도들—여성의 직장 퇴출, 다처제, 이슬람 대학으로의 전환 등—은 충격적이지만, 우엘벡은 그것을 신랄한 풍자 대신 건조한 사실처럼 서술한다. 그리고 프랑수아를 비롯한 프랑스 지식인들은 이런 변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학교수라는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회교도 개종을 택하며, 성적 욕망의 만족이라는 사적 이득을 따르는 길을 택한다. 이 지점에서 우엘벡은 유럽 자유주의의 진정성 부재와 실용주의적 복종을 강하게 비판한다.
우엘벡의 메시지는 단순하지 않다. 그는 이슬람 자체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와 신념을 상실한 유럽 사회가 어떻게 자기 스스로를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가정한다. 이슬람은 단지 하나의 배경일 뿐이며, 본질은 서구 문명이 자초한 자멸의 은유에 가깝다. 따라서 복종은 프랑스 사회에 대한 고발이자, 더 넓게는 서구 전체의 정체성 해체와 공동체의 몰락을 그리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문명의 탈진 포스트민주주의 사회
복종은 흔히 ‘문명 충돌’의 이야기로 오해받지만, 정작 우엘벡은 문명 간 대립보다는 문명 내부의 피로감과 소진에 더 큰 초점을 맞춘다. 소설 속 프랑스는 겉보기엔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체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시민들은 그 체제를 믿지도 않고, 지식인도 이상을 지키려 하지 않으며, 모든 관계는 개인화되고 고립되어 있다. 정치적 의사결정은 참여가 아닌 무관심 속에서 이루어지고, 종교는 공적 담론에서 추방되었으며, 삶은 소비적 유희와 실존적 무의미로 가득 차 있다.
우엘벡은 이러한 상황을 ‘복종’이라는 개념으로 집약시킨다. 이 복종은 이슬람 정권에 대한 물리적 굴복이 아니라, 정신적 피로로 인한 자발적 순응이다. 사람들이 복종하는 이유는 신념 때문이 아니라, 더 이상 싸울 가치도, 지킬 가치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니체가 말한 ‘최후의 인간’, 즉 쾌락과 안락에만 몰두하는 존재의 전형과도 연결된다.
이처럼 복종은 포스트민주주의 사회에 대한 우화다. 주인공은 투표조차 하지 않고, 정권이 바뀌는 과정은 마치 비 오는 날 뉴스 보듯 무감각하게 지나간다. 심지어 프랑수아는 체제 변화 이후 생활 조건이 오히려 나아진다는 점에서, 변화에 대한 저항은커녕 적응을 선택한다. 여성 인권의 후퇴, 종교의 공공 영역 확장이라는 심각한 전환 속에서도, 삶은 계속되고, 개인은 안락함을 선택한다. 이런 전개는 ‘문명의 충돌’이 아닌 ‘문명의 탈진’이라는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우엘벡은 서구 문명이 이슬람 문명에 패배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무너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상대가 누구냐가 아니라, 스스로의 기반이 얼마나 약해졌는가이다. 이 소설은 공포가 아닌 냉소, 충돌이 아닌 무관심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것이 오히려 더욱 강력한 경고가 된다.
미셸 우엘벡의 복종은 불편한 작품이다. 종교, 정체성, 정치, 성에 대한 파격적인 설정과 담론은 독자를 도전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 소설은 단순한 도발이 아니다. 그것은 정체성을 상실한 사회와 인간의 초상이며, 우리가 이미 복종하고 있는 여러 형태의 현실에 대한 은유다. 우엘벡은 복종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복종해버린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질문하는 인간’의 가능성을 역설적으로 되살린다. 우리는 여전히 질문할 수 있을까? 이 불편한 작품은 그 질문을 독자에게 조용히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