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한 소년의 이야기로 시작해, 결국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려는 노력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된다. '감정결핍'이라는 의학적이고 특수한 상태를 지닌 인물을 통해, 작가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외로움, 단절, 성장, 그리고 공감에 대해 정밀하게 묘사한다. 이 글에서는 아몬드의 핵심 키워드인 감정결핍, 성장, 공감을 중심으로 주인공 윤재의 내면 여정과 상징적 의미, 그리고 이 작품이 우리 시대에 던지는 질문을 세 가지 소제목을 통해 깊이 있게 분석해본다.
소설 아몬드 속 감정결핍
아몬드의 주인공 윤재는 태어날 때부터 뇌의 편도체, 즉 감정을 담당하는 아몬드 모양의 부위가 작아 감정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 감정결핍 증상을 가지고 있다. 그는 분노나 두려움, 기쁨 같은 기본적인 감정 반응조차도 경험하지 못한다. 이는 단순히 의학적 장애로 보일 수 있지만, 손원평 작가는 이를 인간 심리의 메타포로 사용한다. 윤재는 감정이 없는 기계가 아니다. 그는 감정을 ‘배우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이다. 어머니는 아들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어린 시절부터 감정 훈련을 시켰다. 기쁨, 슬픔, 분노, 놀람 등의 감정을 담은 표정을 플래시카드로 가르치고, 특정 상황에 맞는 말과 표정을 반복 훈련시킨다. 윤재에게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철저히 ‘학습된 기술’이다.
그의 세계는 질서 있고 조용하지만, 동시에 외롭고 낯설다. 그는 친구도 없고,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도 못한다. 타인이 느끼는 감정에 반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해를 사고, 학교에서는 종종 괴롭힘을 당하거나 무시당한다. 하지만 윤재는 불평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상태를 받아들이고, 주어진 방식대로 삶을 살아간다. 감정이 없다는 것이 불행하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것이 ‘자신의 방식’일 뿐이라는 듯 담담하게 일상을 서술한다.
윤재의 세계를 뒤흔드는 사건은 바로 그의 생일 날 벌어진 강도 사건이다. 어머니와 할머니가 거리에서 무차별적으로 공격당하고, 윤재는 그 현장을 목격하지만 아무런 감정적 반응을 하지 않는다. 공포도, 분노도, 슬픔도 느끼지 못한 채, 그는 그냥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고, 이후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일기를 쓴다. 이 장면은 독자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긴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라는 생각과 함께, 우리는 다시 질문하게 된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이는 괴물인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고통을 감내하는 존재인가?’
윤재는 결코 괴물이 아니다. 그는 너무나 인간적인 방식으로 고통을 받아들이고, 감정이라는 낯선 영역을 이해하려고 애쓴다. 어머니가 혼수상태에 빠지고, 보호자가 사라진 뒤 그는 본격적으로 홀로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보호받지 못한 채 감정 없이 세상에 내던져진 윤재는, 그제서야 처음으로 ‘감정’을 갖고 싶은 욕망을 자각하게 된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싶고, 울고 싶고, 화도 내고 싶다는 내면의 울림이 생긴 것이다. 감정을 ‘갖지 못했던’ 소년이, 감정을 ‘갖고 싶어 하는’ 존재로 변화하는 과정. 이것이 아몬드의 첫 번째 서사적 진전이자, 작품이 전하는 가장 섬세한 고백이다.
성장 속에서 태어난 관계와 변화
윤재가 진정으로 성장하기 시작하는 계기는 바로 ‘곤이’라는 인물과의 만남이다. 곤이는 윤재와는 정반대의 존재다. 감정이 너무 많고, 그것을 주체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는 폭력적이며 충동적이고, 학교에서는 문제아로 낙인찍힌 존재다. 곤이는 처음에는 윤재를 괴롭힌다. 감정을 전혀 보이지 않는 윤재의 태도에 불쾌함을 느끼고, 그를 시험하고 도발한다. 그러나 윤재가 아무리 괴롭힘을 당해도 반응하지 않자, 곤이는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하며 점차 그에게 관심을 갖는다.
두 사람의 관계는 서로의 결핍을 자극하면서도, 동시에 치유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곤이는 윤재에게 감정을 배우고, 윤재는 곤이를 통해 감정을 체험한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고통, 타인의 눈을 바라보는 법, 분노나 슬픔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를 윤재는 곤이의 몸짓과 행동에서 배운다. 특히 어느 날, 곤이가 위기에 처했을 때 윤재가 자발적으로 곤이를 보호하기 위해 나서는 장면은, 그가 처음으로 감정에 의해 움직였다는 것을 상징한다. 그는 더 이상 감정을 흉내 내는 존재가 아니라, 진짜 감정을 ‘느끼는 인간’으로 변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라와의 만남 역시 윤재의 내면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계기다. 도라는 밝고 당당하며, 윤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인물이다. 그녀는 윤재에게 관심을 갖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의 반응을 통해 그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윤재는 도라와 함께하면서 설렘이라는 감정을 처음으로 경험한다. 감정의 이름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녀와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 그녀를 기다리게 되는 자신을 보며 윤재는 새로운 자아를 발견한다. 성장기 소년이 처음 느끼는 사랑 혹은 호기심의 감정은 아몬드에서 매우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묘사된다.
이처럼 윤재의 변화는 급격하거나 극단적이지 않다. 그의 성장은 아주 미세하고, 서서히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 변화는 진실하고 진지하다. 그는 여전히 감정을 완벽히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점차 타인의 감정에 반응하고, 공감하고, 그 감정의 흐름에 자신을 내맡기기 시작한다. 감정을 배운다는 것, 공감을 연습한다는 것은 단지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결국 자기 자신을 완성해가는 과정임을 윤재는 보여준다.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를 통해 배울 점
아몬드는 단지 한 소년의 성장 이야기가 아니다. 이 작품은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결핍에 대해 말한다. 누군가는 감정을 과하게 느끼고, 누군가는 너무 무뎌져 있고, 누군가는 표현하는 법을 잊고 살아간다. 감정을 나누고 공감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는 이 시대에, 윤재는 말한다. “나도 감정을 느끼고 싶었다”고. 그리고 그의 고백은, 우리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게 만든다.
현대 사회는 감정 과잉의 시대이면서도, 동시에 공감 결핍의 시대다. SNS에서는 매일 수천 개의 감정이 쏟아지지만, 그 안에서 진짜 감정을 분별하기란 어렵다. 우리는 누군가의 고통에 ‘좋아요’를 누르며 슬픔을 소비하고, 타인의 분노를 구경거리로 삼기도 한다. 아몬드는 이런 시대의 모순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주인공이 오히려 가장 깊이 감정의 본질에 다가서는 역설. 그것이 바로 이 작품의 힘이다.
또한 아몬드는 우리에게 ‘감정은 학습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타고난 능력이 아니어도, 감정을 이해하고 나누는 일은 가능하다는 메시지. 윤재는 결국 완전해지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서툴고, 여전히 어색하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는다. 그는 계속해서 타인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그 관계 안에서 자신을 찾아간다. 이 점에서 윤재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
아몬드는 청소년 소설이라는 장르적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안에는 전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깊은 정서와 철학이 담겨 있다. 자녀를 둔 부모라면 윤재의 어머니를 통해 부모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고, 교사라면 학생들의 감정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며, 성인 독자라면 인간관계의 본질과 내면의 감정 세계를 되돌아보게 될 것이다.
결국, 이 작품이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는 이 한 문장일 것이다. “감정은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다.” 윤재의 여정을 따라가며 우리는 공감을 배운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을 때, 우리는 조금 더 따뜻해진 마음으로 주변 사람을 바라보게 된다. 그것만으로도 아몬드는 충분히 아름답고, 의미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