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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자기 앞의 생 속 아이의 시선, 윤리적 결단, 유대와 헌신

by anmoklove 2025. 11. 8.

소설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La Vie devant soi)는 프랑스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걸작 중 하나로, 사랑, 존엄, 타자성과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사실 이 작품의 저자는 로맹 가리로, 에밀 아자르는 그의 필명이다. 노년의 로맹 가리는 새로운 이름으로 새로운 삶을 살고자 했고, 이 소설을 통해 가장 인간적인 언어로 세상의 가장 비인간적인 현실을 담아냈다. 이야기의 화자는 모모라는 어린 소년이다. 그는 아랍계 이민자의 아들이며, 매춘부였던 어머니에게서 버림받고, 노년의 유대인 여성 로자 아줌마와 함께 살아간다. 이 비정상적인 가정 속에서 모모는 사회가 외면한 존재들과 함께 살아가며 삶의 다양한 얼굴과 마주한다. 자기 앞의 생은 가난, 인종, 노쇠, 정체성의 문제들을 아이의 순진하지만 날카로운 시선을 통해 보여주며, 인간 존재의 연약함과 위대함을 동시에 드러낸다. 문학이 줄 수 있는 최고의 감동은 이해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이 소설은 강렬하게 증명한다. 이 글에서는 아이의 시선, 윤리적 결단, 유대와 헌신 으로 내용을 정리하고자 한다.

소설 자기 앞의 생 속 아이의 시선

자기 앞의 생의 가장 큰 문학적 특징은 어린 모모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이다. 모모는 열네 살 정도의 소년이지만, 정확한 나이는 불분명하며, 그의 언어는 때로는 순진하고 때로는 놀라울 정도로 성찰적이다. 아자르는 이 아이의 시선을 통해 삶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독자가 가진 기존의 편견이나 이념적 프레임을 무장 해제시킨다. 아이는 논리보다 감정으로 세계를 인식하고, 판단보다 관찰로 타인을 받아들인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의 고통, 이민자들의 피로, 정신질환자의 두려움까지 모두 자기 눈과 가슴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그가 살아가는 공간은 프랑스 파리의 뒷골목,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사회의 ‘변두리’에 존재하는 이들이다. 모모는 이들을 ‘불쌍한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그들로부터 삶을 배우고, 관계의 온기를 느낀다. 이를 통해 독자는 사회적 약자를 보는 시선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이의 시선은 비판적이지 않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더욱 강한 울림을 준다. 어린이 화자의 방식으로 쓰인 이 소설은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삶의 모습들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드는 ‘문학적 장치’로 기능한다. 또한, 모모의 언어는 문법적으로 어설프고, 단어 선택이 엉뚱한 경우도 있지만, 그 안에는 진심이 담겨 있다. 그의 말은 계산된 문장이 아니라, 삶과 감정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표현이다. 로맹 가리는 이 점에서 독특한 스타일의 문장을 구현해냈으며, 문학에서 진실이 반드시 유창한 문장으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모모의 혼란, 슬픔, 그리고 작지만 소중한 희망은 어른들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진실을 전하고 있다. 아이의 시선으로 본 세계는 불완전하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인간의 진짜 얼굴이 드러난다.

윤리적 결단 말보다 행동

자기 앞의 생은 타자와의 공존이 가능하냐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작품이다. 로자 아줌마는 나치 수용소 생존자로, 유대인 노인 여성이며, 모모는 북아프리카계 무슬림 남자아이다. 종교, 인종, 세대, 문화 모든 것이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산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보자면 매우 비정상적인 조합이다. 그러나 바로 그 비정상성이 이 소설의 중심 윤리를 이룬다. 이들은 사회가 배척한 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고, 그 안에서 가장 인간적인 감정을 나눈다. 로자는 수십 년 전 매춘을 했으며, 이후엔 매춘부들의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한다. 그녀의 삶은 결코 윤리적이라 평가받을 수 없다. 하지만 그녀는 가장 윤리적인 삶을 산다. 그녀는 아이들을 외면하지 않았고, 모모에게는 어머니이자 아버지였으며, 동시에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으로 남기 위해 애썼다. 그녀가 병들고, 기억을 잃어가며 점점 죽음에 가까워질 때, 모모는 그를 ‘숨겨준다’. 병원에 보내지 않고, 로자의 마지막 소망대로 그녀의 공간에서 함께 삶의 끝을 맞이하게 한다. 이 장면은 인간 존엄성과 타자에 대한 존중이 무엇인지를 뚜렷이 보여준다. 모모는 로자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곁을 지키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인다. 이 수용의 태도는 단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적 결단이다. 아자르는 모모를 통해 타자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란 말보다 행동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이 소설은 프랑스 사회 내 이민자, 노인, 정신질환자, 매춘부, 동성애자 등 다양한 소수자들을 통해 공존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각각의 타자가 모여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는 것은 문학적 상징을 넘어서, 오늘날 현실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다. 이 소설이 지닌 가장 중요한 윤리적 태도는 ‘정의’나 ‘정답’을 말하지 않는 데 있다. 자기 앞의 생은 누가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삶을 마주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만든다. 바로 이 점에서 이 작품은 단지 소설이 아니라, 윤리적 텍스트로서의 가치를 갖는다.

유대와 헌신 다면적 존재

자기 앞의 생은 결국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이 사랑은 일반적인 낭만적 사랑이나 가족애와는 다르다. 이 사랑은 조건 없이 존재를 받아들이고, 그 존재가 마지막까지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지켜보는 책임과 태도를 포함한다. 모모와 로자, 둘 사이의 관계는 법적, 혈연적, 사회적으로 아무런 이름을 가질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가장 강한 유대와 헌신으로 묶여 있다. 모모는 로자의 낡은 침대를 치우지 못하고, 그녀가 좋아하던 향수를 방에 남겨두며, 그녀의 삶을 기억한다. 그것은 애도이자 연대다. 로자는 끝내 병으로 무너지고, 말조차 할 수 없게 된다. 그럼에도 모모는 그녀를 사람으로 대해준다. 그녀가 더 이상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받지 않도록 끝까지 곁을 지킨다. 이 사랑은 존엄을 지키는 행위이며, 인간 존재를 끝까지 긍정하는 태도다. 작가는 이처럼 사랑을 통해 인간이 어떤 절망 속에서도 서로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또한, 모모는 성장 과정에서 수많은 다른 형태의 사랑을 경험한다. 트랑지스터(트랜스젠더 간호사), 매춘부 친구들, 고양이, 동네 이웃들. 각각의 존재는 모모의 정체성 형성과 세계 이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아자르는 이 다양한 관계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다면적 존재인지를 보여준다. 사랑은 단일하지 않다. 때론 불완전하고, 때론 엉뚱하며, 때론 거칠다. 하지만 그 모든 사랑이 모모를 성장하게 만든다. 이러한 사랑은 단지 감정이 아닌 실천이다. 로자와 모모는 서로를 지키기 위해, 함께 살아남기 위해 실제로 행동한다. 이 실천적 사랑이야말로 아자르가 말하는 ‘인간성’이다. 자기 앞의 생은 이처럼 사랑이라는 주제를 거창한 개념으로 다루지 않고, 삶의 세세한 순간 속에서 구체적으로 구현해낸다. 사랑은 ‘같이 있는 것’, ‘기억하는 것’, ‘버리지 않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깊은 울림을 남긴다.

자기 앞의 생은 문학이 어떻게 인간 존재의 고통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포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 뒤에 숨은 로맹 가리는 이 소설을 통해, 존재의 연약함을 비극적으로 그리지 않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작고 단단한 연대와 사랑을 섬세하게 포착해냈다. 모모의 삶은 불안정하고 위태로우며, 로자의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결말이지만, 그들이 함께했던 시간은 인간다움의 가장 깊은 증거로 남는다.

이 소설은 사회적 경계 너머에 있는 사람들, 이름조차 제대로 불리지 못한 존재들에 대한 연민과 존중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아이의 언어’로 풀어내어 독자의 가슴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자기 앞의 생은 삶이 무엇인지를 정의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무엇이든, 함께 있는 존재와 끝까지 버티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이라고 속삭여준다. 오늘날처럼 소외와 갈등이 반복되는 시대에 이 소설이 여전히 강한 울림을 주는 이유는, 우리가 잊고 있던 가장 기본적인 인간성—이해와 존중, 사랑—을 되새기게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