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소설 조서 속 아담의 고독, 비인격적 시스템, 자신에 대한 인식

by anmoklove 2025. 11. 7.

소설 조서

르 클레지오의 조서(Le Procès-Verbal)는 1963년, 그가 불과 23세의 나이에 발표한 데뷔작이자, 그를 곧바로 프랑스 문단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작품이다. 이 소설은 겉으로는 주인공 아담 폴로라는 한 남성의 삶을 따라가는 구조를 취하고 있지만, 그 내면에는 아담의 고독, 비인격적 시스템, 자신에 대한 인식이 가득 담겨 있다. 조서는 단순한 줄거리가 아니라, 존재를 둘러싼 철학적 질문, 문명의 본질에 대한 해체적 시선, 그리고 인간 소외에 대한 문학적 실험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텍스트다. 이 작품을 통해 클레지오는 언어의 무력함과 자아의 붕괴, 근대적 인간상이 겪는 내면의 분열을 문학이라는 형식으로 치열하게 해석해낸다. 독자는 소설을 읽으며 점점 현실에서 이탈하는 한 인물의 시선을 따라가고, 그가 던지는 ‘나는 누구인가’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 앞에 멈춰 서게 된다.

소설 조서 속 아담의 고독

조서의 주인공 아담 폴로는 사회로부터의 고립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인물이다. 그는 도심 속 낡은 건물에서 혼자 생활하며, 타인과의 관계를 의도적으로 단절한다. 이러한 고립은 단지 육체적인 고독이 아니라, 언어와 소통의 단절로까지 이어진다. 그는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를 피하고, 스스로 말과 언어를 의심한다. 그의 내면은 점차 언어가 의미를 상실하고, 세계를 설명할 수 없다는 절망으로 채워진다. 클레지오는 언어의 무력함을 전면에 내세운다. 아담은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그것이 더 이상 타인과의 소통이나 자기 표현의 도구가 아님을 깨닫는다. 언어는 왜곡되고, 파편화되며, 결국 침묵만이 남는다. 이러한 언어 해체의 배경에는 20세기 중반 유럽 사회의 문화적 변화가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인간은 절대적 이념이나 신념에 대한 신뢰를 잃었고, 그와 함께 언어에 대한 믿음도 약화되었다. 언어는 더 이상 진실을 담보하지 않으며, 오히려 진실을 왜곡하거나 감추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아담의 고독은 단순한 개인적 특성이 아니라, 그 시대가 인간에게 부여한 구조적 한계의 반영이다. 그는 말을 하지만, 말이 의미를 갖지 않으며, 그는 사람들을 바라보지만,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클레지오는 이러한 언어의 실패를 실험적인 문체로 구현해낸다. 반복되는 문장, 불완전한 구문, 맥락이 붕괴된 대화 속에서 독자 역시 언어적 불안을 체험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소설의 스타일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자신을 정립하는 가장 기본적인 도구가 무너질 때, 그 혼란이 얼마나 전방위적인지를 보여주는 장치다. 조서는 이처럼 언어가 의미를 상실할 때 인간이 어떻게 고립되고, 내면적으로 붕괴되는지를 보여주는 강렬한 철학적 텍스트다.

비사회성 비인격적 시스템

아담 폴로는 사회와 충돌한다. 그는 소외된 자이자, 자발적으로 사회를 거부한 인물이며, 동시에 사회로부터 배척된 존재다. 이중적인 위치 속에서 그는 점점 현실 세계와의 접촉을 잃어간다. 조서에서 사회는 질서를 강요하는 기계처럼 묘사된다. 시민들은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며, 개성보다는 효율과 순응을 요구받는다. 그러나 아담은 이러한 규범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취업도 거부하고, 규칙에도 반응하지 않으며, 결국 체제의 논리로는 이해되지 않는 존재로 전락한다. 경찰에 의해 체포되고, 정신병원에 수용되며, 사회의 이탈자로 낙인찍힌다. 르 클레지오는 이 장면들을 통해 현대 문명이 가진 폭력성을 드러낸다. 비정상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을 규정하고, 다름을 병리화하며, 통제하려는 구조가 존재한다. 아담은 실제로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고방식, 그의 언어, 그의 비사회성은 체제에게 위협으로 인식된다. 클레지오는 이를 통해 인간이 시스템 속에서 얼마나 쉽게 배제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조서’라는 제목은 이 과정의 행정적 절차, 즉 인간을 수치화하고 문서화하는 현대 사회의 비인격적 시스템을 상징한다. 또한 아담의 정신적 불안정성은 그가 비정상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세계가 그에게 지나치게 정상성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클레지오는 '정상'이라는 기준 자체가 사회가 정한 임의의 틀일 뿐이며, 그 기준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한 존재가 파괴되어야 하는가를 질문한다. 독자는 아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음’으로 치부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구조와 규범이 얼마나 억압적일 수 있는지를 되짚어보게 된다. 이 소설은 단지 한 개인의 실존적 혼란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윤리적 결함, 인간에 대한 제도적 폭력, 다양성에 대한 관용 부족을 비판하는 작품이다. 아담 폴로는 추방된 자이자, 동시에 거울이다. 그는 우리 사회의 기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우리 내부의 균열을 반영하는 존재다.

철학적 정수 자신에 대한 인식

조서라는 제목은 소설 전체의 철학적 정수를 상징한다. 조서란 흔히 경찰이나 행정기관이 작성하는 공식 문서로, 어떤 사건이나 존재를 ‘기록’하고 ‘증명’하는 수단이다. 아담 폴로가 이 소설의 마지막에서 경찰에 의해 체포되고, 정신병원에 수감되는 과정은 결국 그를 '존재하는 자'로 국가가 인지하는 과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사회에서 철저히 배제되어야만 비로소 ‘인정’된다. 즉, 체제는 배제를 통해 존재를 승인한다. 클레지오는 이 역설적인 과정을 통해 존재의 근거가 외부에 의존하고 있다는 현대 사회의 모순을 비판한다. 이 조서는 아담이 누구인지, 어떤 행동을 했는지를 정리하는 문서이지만, 동시에 그의 내면에는 닿지 못하는 문서이기도 하다. 현실의 조서는 단지 형식적인 기록일 뿐, 그의 고독, 언어의 해체, 존재의 불안은 기록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은 현대인이 겪는 정체성의 위기와도 맞닿아 있다. 우리는 주민번호, 학력, 경력 등의 문서로 ‘증명’되지만, 그것이 우리 존재 전체를 담지는 못한다. 아담의 존재는 조서로 기록되지만, 이해되지는 않는다. 더 나아가 클레지오는 이 조서를 통해 문학의 역할 자체를 질문한다. 문학 역시 어떤 면에서 인간의 삶을 기록하는 조서와 같지만, 단지 사실의 나열이나 사건의 구조로는 인간을 이해할 수 없다. 클레지오의 문장은 파편적이고 불완전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더 진실하다. 왜냐하면 인간의 내면, 특히 고독과 분열, 언어적 불안은 결코 정돈된 구조로 설명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담은 사회가 정한 '문명인'의 틀에서 벗어난 인물로, 철저히 혼자 존재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는 가장 인간다운 질문을 던진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 세계에 있는가”, “무엇이 나를 나이게 하는가”. 이 질문들은 단지 아담의 것이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질문이기도 하다. 조서는 아담이라는 인물을 통해 독자 스스로가 자신의 내면과 사회적 정체성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이다.

르 클레지오의 조서는 단지 한 남자의 고독한 삶을 그린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언어의 실패, 인간 소외의 본질, 문명의 위선, 존재 증명의 역설을 통합적으로 탐구하는 현대 문학의 실험이자 선언이다. 소설 속 아담 폴로는 비정상적 인물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가 품은 질문과 고통은 너무도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인간의 고민이다. 클레지오는 사회가 만든 정상성과 제도적 언어에 균열을 내며, 존재의 본질은 타인의 승인이나 시스템에 의한 기록이 아니라, 내면의 목소리와 고독 속에서 비롯됨을 보여준다.

조서는 문학이 단지 줄거리를 전달하는 매체가 아니라, 존재론적 질문을 실험하는 장이라는 점을 강하게 증명한 작품이다. 언어가 무력해질 때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사회로부터 추방된 개인은 어떻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가? 르 클레지오는 이 작품을 통해 이러한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며, 우리가 살아가는 체제와 인간성, 그리고 자신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하게 만든다. 조서는 단순히 읽히는 텍스트가 아니라, 독자 스스로가 조서를 작성해야만 하는 실존의 시험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