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소설 질투 속 서사 구조의 해체, 정서적 풍경, 권력 작용의 일환

by anmoklove 2025. 11. 24.

소설 질투

로브그리예의 소설 질투는 프랑스 문학사의 전환점으로 평가받는 ‘누보 로망’의 대표작으로, 전통적인 소설 구성의 해체를 선언하는 작품이다. 이야기, 인물, 심리라는 기존의 서사적 요소를 배제하고, 순수한 시선과 사물의 묘사로 인간 내면과 세계를 구성하려는 이 실험적 소설은 독자에게 익숙하지 않은 읽기의 방식을 요구한다. 질투는 말 그대로 질투라는 감정이 주도하는 이야기를 다루지만, 그 감정은 전면에 드러나지 않고 오히려 감정의 부재 속에서 차갑게 반복되는 묘사를 통해 독자의 심리 속에서 구성된다. 이 작품은 서술자가 누구인지조차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인물들의 행동과 풍경, 사물의 배열을 통해 서서히 드러나는 내면의 파열음을 조율해낸다.

이 글에서는 질투를 세 가지 핵심 주제로 분석한다. 첫째, 누보 로망의 형식 실험과 서술자의 위치. 둘째, 반복과 묘사를 통한 감정 해체의 문학적 전략. 셋째, 시선의 지배와 서사의 권력화. 로브그리예는 이 작품을 통해 독자가 감정 이입이나 이야기 전개에 기대는 전통적 독서의 습관에서 벗어나, 언어와 시선의 구조를 통해 의미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독해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질투는 단순한 이야기나 줄거리가 아닌, 독자와 세계 사이의 지각적 긴장과 해석의 운동으로 구성된 문학 실험이며, 감정이라는 가장 인간적인 요소가 언어와 시선의 분해 속에서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보여주는 텍스트다. 본문에서는 서사 구조의 해체, 정서적 풍경, 권력 작용의 일환 이라는 소제목으로 내용을 정리하고자 한다.

소설 질투 속 서사 구조의 해체

질투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전통적인 서사 구조의 해체다. 독자는 이 소설에서 명확한 줄거리, 사건의 흐름, 인물 간의 갈등과 해소 같은 익숙한 요소를 발견할 수 없다. 대신 독자는 반복적인 묘사, 시간의 분열, 인과관계의 단절 속에서 이질적인 감각의 조각들을 마주하게 된다. 특히 서술자의 위치는 작품의 근간을 흔드는 핵심 요소다. 전지적 작가 시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모든 시선이 특정한 위치—‘창문 너머의 공간’, ‘거실의 의자’, ‘침실의 문틈’—에 고정된 듯 보이며, 독자는 서술자가 바로 주인공일지도 모른다는 암시만을 받을 뿐이다.

이러한 불확정적 서술은 로브그리예가 의도한 ‘객관적 서술’의 전략이다. 그는 작가의 심리나 인물의 내면을 분석하거나 해석하지 않는다. 대신 모든 것은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방식으로 제시되며, 서술자는 감정이나 해석 없이 사물의 위치, 인물의 손동작, 시계의 초침 소리까지 정밀하게 기술한다. 이로써 서사는 ‘말하는 자’가 아닌 ‘보는 자’의 시선에 의해 지배된다. 그러나 그 ‘보는 자’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오히려 그가 고정하는 시선은 반복되는 감시, 집착, 침묵 속의 폭력으로 변모한다. 이러한 시선의 구성은 독자로 하여금 의심하게 만든다—‘보는 자는 누구이며, 왜 그렇게 보고 있는가?’

질투는 이처럼 서술자의 불분명함을 통해, 독자가 스스로 의미를 조립하도록 강요한다. 그 어떤 감정도 명시되지 않지만, 오히려 그 결핍이야말로 독자의 감정적 반응을 유발한다. 질투의 감정은 직접적으로 서술되지 않고, 아내 아르망드와 친구 프랑크 사이에 벌어지는 사소한 제스처, 시선의 흐름, 테이블 위의 유리잔의 미묘한 위치 변화 등으로 드러난다. 이와 같은 기술은 서사 대신 묘사, 감정 대신 사물, 줄거리 대신 구조를 통해 문학을 구성하려는 누보 로망의 대표적 특징이며, 로브그리예는 질투를 통해 기존 소설의 본질을 근본부터 뒤흔든다.

정서적 풍경

질투는 감정적으로 가장 폭발적이고 인간적인 감정 중 하나다. 그러나 로브그리예의 질투는 이 감정을 철저하게 해체한다. 전통적인 소설이라면 주인공의 심리 묘사나 내면 독백을 통해 질투의 고통을 전달할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질투는 주인공의 내면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감정은 반복되는 묘사 속에 ‘스며든다’. 같은 장면이 각기 다른 각도에서 반복되며, 동일한 사물이 조금씩 다른 시간에 다시 등장한다. 이러한 반복은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감정의 ‘작동’을 보여준다.

예컨대 아르망드가 프랑크에게 미소를 보냈다는 묘사는 여러 번 반복되며, 때로는 그녀의 손의 움직임, 옷자락의 흔들림, 발끝의 위치까지 극도로 세밀하게 묘사된다. 이러한 기술은 독자로 하여금 사소한 제스처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도록 유도하고, 동시에 그것이 정말 의미가 있는지 의심하게 만든다. 이 모호함 속에서 질투는 감정이 아니라, 언어 구조 자체의 반복과 변주 속에서 생성된다. 독자는 이 구조의 틈새에서 ‘질투하고 있는 시선’을 감지하며, 그것이 바로 주인공, 혹은 독자 자신의 시선일 수 있다는 자각에 이른다.

로브그리예는 감정을 묘사하지 않음으로써, 감정을 훨씬 더 강렬하게 전달한다. 그는 감정의 표현이 감정을 감추는 일종의 위장술일 수 있다고 보며, 감정은 차라리 구조의 균열 속에서, 언어의 반복과 단절 속에서 드러난다고 주장한다. 질투는 소설이지만, 동시에 건축적이기도 하다. 사물들의 위치, 조명, 거리, 소리의 강도는 일종의 ‘정서적 풍경’을 구성하고, 그 풍경 안에서 독자는 질투라는 감정을 조용히 체험하게 된다. 이는 문학이 반드시 서사를 통해 감정을 전달해야 한다는 전통을 전복하는 기법이며, 감정의 재현이 아니라 감정의 ‘조형’이라는 새로운 문학적 가능성을 열어준다.

권력 작용의 일환

질투라는 감정의 본질은 시선과 관련되어 있다. 보는 자가 있고, 보이는 자가 있으며, 그 사이의 비대칭적 긴장 속에서 질투는 형성된다. 로브그리예의 질투는 이 관계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인다. 독자는 서술자의 시선과 동일화되는 동시에, 그 시선이 집착과 감시, 의심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지켜본다. 처음에는 객관적 묘사처럼 보이던 장면들이 반복되면서 점차 불편함을 느끼게 되며, 서술자의 시선은 점점 폭력적이고 폐쇄적인 감옥처럼 느껴진다. 이때 시선은 단지 정보 전달의 수단이 아니라, 존재의 통제 도구로 작용한다.

아르망드와 프랑크의 일거수일투족은 이 서술자의 시선 안에서 재구성된다. 그러나 그들이 실제로 어떤 관계인지, 어떤 감정을 나누는지는 결코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 모호함은 시선이 얼마나 믿을 수 없는 것인가를 드러내며, 독자 스스로도 그들의 관계를 판단하려 들게 만든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실 여부가 아니라, 그 관계를 지켜보는 시선 자체가 어떻게 욕망과 질투, 소유욕을 구성하는가이다. 로브그리예는 이러한 구성을 통해 서술이 단지 중립적인 기술이 아니라, 권력 작용의 일환임을 보여준다.

질투에서 시선은 감시이며, 동시에 소유다. 주인공은 아내의 행동을 통해 그녀를 통제하려 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그 통제를 벗어나 있다. 그녀의 움직임은 정확히 묘사되지만, 그녀의 내면은 완전히 비어 있다. 이는 여성 캐릭터가 서사의 주체가 아니라 시선의 대상일 뿐이라는 점을 드러내며, 동시에 그 시선이 얼마나 허약하고 불안정한지를 폭로한다. 질투는 단지 남성 주체의 감정적 고통이 아니라, 시선이 만들어내는 존재의 불안, 언어가 포착할 수 없는 타자의 존재를 마주하는 체험이다.

결론적으로 질투는 누보 로망이라는 문학 사조의 대표작이자, 감정, 서사, 시선이라는 문학적 장치를 철저히 해체하고 재구성한 실험적 작품이다. 로브그리예는 이 소설을 통해 문학이 더 이상 이야기나 감정의 전송 수단이 아니라, 세계와 인간을 구성하는 언어적 장치임을 선언한다. 질투는 어렵고 낯설지만, 그 낯섦 속에서 독자는 문학이 감정을 다루는 방식, 시선이 지배하는 구조, 언어가 의미를 생성하는 방식에 대해 새롭게 사고하게 된다. 이 작품은 단지 읽는 텍스트가 아니라, 보는 것, 느끼는 것, 해석하는 것 자체를 전복하는 문학적 체험이다. 로브그리예는 질투를 통해 독자에게 말한다. “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지만, 모든 것은 이미 시선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