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소설 페스트 속 부조리한 세계, 공동체, 실존적 윤리의 핵심

by anmoklove 2025. 11. 8.

소설 페스트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La Peste)는 20세기 문학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실존주의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1947년에 발표된 이 소설은 알제리의 오랑이라는 가상 도시를 배경으로, 정체불명의 전염병이 퍼지며 벌어지는 사건들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페스트는 단순한 전염병 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마주하는 부조리한 현실, 죽음과 무의미 앞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 그리고 타인과의 연대라는 철학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다. 주인공 리외 의사를 비롯해 다양한 인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페스트에 맞서 싸우는 모습은, 실존 철학의 핵심인 ‘행동’과 ‘자유’의 문제를 극적으로 형상화한다. 특히 이 작품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더욱 폭넓은 재조명을 받으며, 인간 존재와 공동체 윤리에 대한 통찰을 제시하는 텍스트로 자리매김했다.

이 글에서는 부조리한 세계, 공동체, 실존적 윤리의 핵심 3가지의 주제로 분석해보고자 한다.

소설 페스트 속 부조리한 세계

카뮈는 철저히 부조리한 세계를 전제로 한다. 페스트에서 벌어지는 전염병은 원인도, 이유도 명확하지 않으며, 피해자는 무작위적이다. 질병은 선과 악, 도덕적 기준과 무관하게 인간을 덮친다. 리외 의사를 비롯한 도시의 주민들은 처음에는 그 상황을 부정하거나 회피하지만, 점차 그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임을 인정하게 된다. 여기서 카뮈가 강조하는 것은 ‘상황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세상은 본래 부조리하며, 인간은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실존주의적 입장이 이 작품의 핵심에 자리한다. 리외는 페스트가 닥쳤을 때 의사로서 본분을 다하려 노력한다. 그는 감정적으로 좌절하지 않고, 누구보다 이성적으로 행동하려 한다. 그는 질병이 정의롭지 않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치료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에 대한 반응’이다. 인간은 의미 없는 세상 속에서 의미 있는 행동을 통해 저항할 수 있다. 리외는 죽음을 앞두고도 하루하루 환자를 치료하고, 기록하며, 삶을 지속하는 방식으로 저항한다. 페스트는 일종의 상징이기도 하다. 전염병이라는 물리적 재난을 넘어서, 그것은 파시즘, 전쟁, 인간성의 타락 등 다양한 현대의 부조리한 현실들을 은유한다. 실제로 카뮈는 페스트를 통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만행과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운동을 암시하고 있다. 리외의 싸움은 단지 의료 행위가 아니라, 인간성을 지키기 위한 윤리적 투쟁이다. 부조리에 맞서 싸우는 인간은 반드시 승리하지는 않지만, 싸우는 그 순간에 이미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킨다. 작품 속 인물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부조리에 반응한다. 타루는 행동으로, 라므베르 기자는 사랑으로, 파늘루 신부는 신앙으로 대처한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결국 마주하는 것은 ‘죽음’이며, 그것 앞에서 인간은 평등하다. 이처럼 카뮈는 현실을 피하지 않으며, 부조리 속에서도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다. 페스트는 절망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그 절망 속에서도 삶을 선택하는 인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희망의 이야기다.

공동체 윤리적 질문

페스트는 개인의 고통을 넘어서 공동체 전체가 어떻게 재난에 대응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오랑의 시민들은 처음에는 안일한 태도로 페스트를 받아들인다. ‘설마 나에게까지 닥치겠어’라는 마음으로, 그들은 초반의 징후를 무시한다. 그러나 도시가 봉쇄되고, 일상이 붕괴되며, 사람들의 죽음이 계속되자 그들은 점차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책임을 자각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페스트는 단지 개인의 실존을 넘어, 사회적 윤리의 문제로 확장된다. 리외는 ‘영웅’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 위대하거나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며, 그것이 옳다고 믿기에 행동한다. 이처럼 카뮈는 윤리를 거창한 개념이 아니라, 일상적 실천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타루 또한 자원해서 방역대를 조직하며 사람들을 돕는다. 그 역시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으며, 오직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해 행동한다. 페스트라는 재난 상황 속에서 공동체는 새로운 방식의 연대를 형성한다. 정치, 종교, 이념이 달라도, 사람들은 고통 앞에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돕게 된다. 카뮈는 이를 통해 인간 사회가 결국 ‘타자’를 통해 완성된다는 철학적 입장을 보여준다.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서로를 돕는 공동체야말로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특히 파늘루 신부의 변화는 이 작품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초기에는 페스트를 ‘신의 벌’로 해석하며 신앙을 강조했던 그는, 점차 신의 뜻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죽음의 부조리함을 깨닫는다. 그는 끝내 병에 걸려 죽음에 이르지만, 자신의 신념과 공동체를 향한 책임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의 모습은 매우 인간적이다. 카뮈는 특정한 입장을 옹호하지 않지만, 그 갈등 속에서 진정한 윤리적 질문이 비롯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페스트는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 다시 주목받았다. 재난 앞에서 개인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사회는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 그리고 연대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이 작품의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윤리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위기의 순간마다 선택되는 구체적 실천이라는 사실을 페스트는 보여준다. 이 점에서 이 소설은 단지 문학작품을 넘어, 하나의 사회적 지침서로서 기능할 수 있다.

실존적 윤리의 핵심 존재의 무게와 책임

페스트는 궁극적으로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질병이라는 위기 속에서 인간은 생존 자체를 위해 싸우지만, 동시에 생존 그 자체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카뮈는 인간이 단지 살아남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이며, 바로 그 질문이 이 소설의 중심을 이룬다. 리외는 환자를 치료하면서도, 자신의 무력함을 자주 느낀다. 그는 때로 좌절하고, 감정적으로 붕괴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치료를 멈추지 않는다. 이처럼 카뮈는 인간의 삶이 완전하거나 전능할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한계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존재의 본질이라고 본다. 페스트는 절망 속에서도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모습을 치열하게 조명한다. 타루는 특히 주목할 만한 인물이다. 그는 과거에 자신이 저질렀거나 연루되었던 ‘간접적인 죄’로 인해 인간 존재의 윤리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인물이다. 그는 리외에게 “성인이 되기보다는 착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이 말은 단순한 도덕적 문장이 아니라, 카뮈가 생각한 실존적 윤리의 핵심을 담고 있다. 거창한 구원이나 이상보다는, 지금 이 순간 곁에 있는 사람을 돕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간다운 삶이라는 것이다. 페스트의 마지막 부분에서 카뮈는 분명하게 말한다. “페스트는 절대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마음속, 서랍 속, 문서 속 어딘가에 숨어 있으며, 언젠가 다시 고개를 든다.” 이 문장은 문자 그대로의 질병뿐 아니라, 인간 내부의 악, 사회적 불의, 그리고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부조리한 사건들을 상징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러한 사태가 닥쳤을 때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 하는 점이다. 리외는 의사로서의 일을 다했지만, 그는 어떤 승리감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책임에 대해 생각하며, 언젠가 또 다른 형태로 다가올 ‘페스트’에 대비하고자 한다. 카뮈는 이처럼 인간 존재의 무게와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 책임을 감당하는 방식 속에서 인간다움이 피어난다고 믿는다. 페스트는 인간이 고통과 부조리 앞에서도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그 존엄은 말이나 철학이 아니라, 행동과 선택에서 증명된다. 생존을 넘어선 이 질문 —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 에 대한 진지한 응답이 바로 이 작품의 중심이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문학적 고전이자, 실존적 철학을 가장 아름답고 강력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단순히 전염병을 다룬 재난 소설이 아니라, 죽음과 의미, 인간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리외, 타루, 라므베르, 파늘루 등의 인물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삶을 선택하며, 그 안에서 우리는 수많은 윤리적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오늘날처럼 불확실성과 위기가 일상화된 시대에 페스트는 더욱 큰 울림을 준다. 그것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고통받는 타인 앞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절망 속에서 의미를 만들 수 있는가?” 카뮈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인간이 그 질문을 던질 수 있고, 끝내 행동할 수 있는 존재임을 믿는다. 그 믿음이야말로 페스트가 주는 가장 위대한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