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폴 사르트르의 『악마와 선한 신(Le Diable et le Bon Dieu)』은 단순한 종교극도, 윤리적 우화를 담은 고전 희곡도 아니다. 이 작품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 자유와 도덕적 선택,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에 따른 무한한 책임이라는 실존주의 핵심 사상을 극 형식 안에 통합한 철학적 드라마다. 사르트르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이 신의 존재 없이도 윤리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 인간의 본질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가 행하는 ‘선한 행동’은 진정한 선의에서 비롯된 것인가, 아니면 죄책감이나 이기심의 변형일 뿐인가 등의 질문을 집요하게 제기한다. 1951년에 초연된 이 희곡은 16세기 독일을 배경으로 하며, 주인공 괴츠의 내면적 변화를 중심으로 선과 악, 신과 인간, 자유와 필연이라는 철학적 대립을 무대 위에서 전개한다. 괴츠는 처음엔 폭력과 약탈을 일삼는 잔혹한 군인으로 등장하지만, 곧 인간애를 깨닫고 돌연 선한 존재로 바뀌며 민중의 편에 선다. 그러나 그는 선한 행동조차 자기기만일 수 있다는 의심에 사로잡히고, 결국 모든 선택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실존의 절벽에 도달하게 된다. 이 희곡은 사르트르 철학의 응축이며, 극적인 갈등과 대사를 통해 철학적 논쟁을 살아 움직이게 만든 텍스트다. 본 리뷰에서는 『악마와 선한 신』의 중심 주제를 세 가지—선과 악의 실존적 구분, 자유와 선택의 본질, 윤리와 인간 조건의 파열—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악마와 선한 신의 선과 악의 실존
괴츠의 인물 구조는 사르트르 실존주의의 핵심인 ‘존재가 본질에 앞선다’는 주장을 극 형식으로 구현한 사례다. 괴츠는 처음에 잔인한 군인이며, 자신이 악을 행하고 있음을 뚜렷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는 단지 악한 환경에 속했기 때문이 아니라, 의식적이고 자발적으로 악을 택한 존재다. 그러나 문제는 그의 변화에 있다. 그는 어떤 계기로 인해 ‘선해지기로 결심’하고, 민중을 해방시키려는 지도자가 된다. 여기서 사르트르는 묻는다. 인간은 정말 ‘선한 존재’가 될 수 있는가? 아니면 선행마저도 자기기만 혹은 죄의식의 변형일 뿐인가? 괴츠는 자신의 ‘선한 행동’이 진정으로 타인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악행에 대한 속죄를 통해 자아를 정당화하려는 이기적 선택인지 혼란에 빠진다. 이 과정에서 선과 악은 고정된 윤리적 본질이 아니라, 끊임없이 선택되고 의심받는 실존적 과정이 된다. 사르트르는 이 연극을 통해 선과 악을 형이상학적 실체로 보지 않고, 인간의 선택 속에서 구성되는 결과로 본다. 괴츠는 선한 행동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려 하지만, 그 정의조차 끊임없이 흔들리고 해체된다. 이처럼 사르트르는 선과 악이라는 윤리적 구분을 고정된 진리로 제시하지 않으며, 오히려 인간이 그 구분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스스로 무너뜨릴 수 있다는 역설을 제시한다. 『악마와 선한 신』은 선함이 도덕적 정당성이나 종교적 계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극도로 불안정하고 모순된 인간 내면의 선택이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드러낸다. 이로써 이 작품은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이 믿는 ‘도덕’이 무엇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것이 얼마나 자기기만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되묻게 만든다.
자유와 책임
사르트르 실존주의 철학에서 ‘자유’는 단순한 권리가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인간 조건이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정의해야 하며, 그 정의에 따른 책임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귀속된다. 괴츠는 그 전형적인 실존적 주체로 등장한다. 그는 잔혹한 폭력의 주체로, 그리고 이후에는 ‘선한 행동’을 택한 주체로서 모든 결정을 스스로 내리고, 그 결과와 함께 살아간다. 그는 어떤 신이나 절대적 도덕 규범에 기대지 않으며, 스스로 자신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존재다. 하지만 사르트르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이 자유가 얼마나 무겁고 고통스러운지, 그리고 어떤 윤리적 함정을 낳는지를 조명하는 것이다. 괴츠는 자유롭게 악을 택했고, 자유롭게 선을 선택했지만, 그 자유는 그를 구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무한한 책임을 져야 하며, 이 책임은 죄의식과 회의, 정체성 혼란으로 이어진다. 사르트르는 여기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자유’를 실존의 핵심으로 제시한다. 인간은 존재함으로써 선택해야 하고, 선택했기에 그 책임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 괴츠는 어떤 신도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스스로 윤리의 방향을 설정하지만, 그 윤리조차 끊임없이 무너진다. 이것은 현대 인간의 실존 조건을 상징한다. 신의 부재 속에서 우리는 모두 스스로 도덕을 만들고,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이는 곧 사르트르가 말한 실존적 자유의 ‘저주’이자, 인간 존재의 무거운 자율성이다. 『악마와 선한 신』은 극이라는 형식을 빌려 이 철학적 개념을 감정적으로도 설득력 있게 전달하며, 자유가 얼마나 고독하고 폭력적인 조건인지를 역설한다. 괴츠는 우리 모두의 실존을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로, 선택과 책임의 딜레마 속에서 파열하는 인간의 복합적 얼굴을 드러낸다.
윤리의 파열
『악마와 선한 신』의 세계에는 전통적인 신이 없다. 이 희곡은 기독교적 배경 위에 놓여 있지만, 사르트르가 구축한 철학적 세계는 신의 부재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도덕을 구성하고 살아가는지를 시험한다. 괴츠는 신을 믿으려 하고, 신의 뜻에 부합하는 삶을 살고자 애쓰지만, 결국 그 신은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인간 삶의 의미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 이는 사르트르가 일관되게 주장한 ‘신은 죽었다’는 비신론적 입장과 맞닿아 있으며, 그 빈자리는 전적으로 인간의 책임과 불안으로 채워진다. 괴츠는 타인을 살리고 해방시키는 ‘선한’ 선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그 선택을 진정한 믿음에서 했는지, 아니면 과거의 죄책감을 상쇄하려는 이기심의 연장인지 알 수 없다는 혼란에 빠진다. 이로써 사르트르는 윤리란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인간 내부에서 생성되고 의심되며 파열되는 불안정한 구조임을 강조한다. 괴츠가 결코 평화롭거나 확신에 찬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는, 그의 모든 행동이 철저히 ‘신 없는 세계’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는 무신론적 실존주의의 주체로서, 자신의 도덕을 자기 안에서 창조하고, 그 윤리조차 의심하고, 다시 해체하는 순환 속에 갇힌다. 이러한 파열은 독자와 관객에게 강력한 물음을 던진다.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선하다고 믿는가? 그리고 그 믿음은 외부의 권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내면에서 온 것인가? 『악마와 선한 신』은 바로 이러한 질문을 회피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이며, 인간이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가, 혹은 스스로 구원이라는 말 자체를 만들고 허물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에 대한 근원적 사유로 나아간다. 사르트르의 세계에서 신은 필요조건이 아니다. 오직 인간만이 존재하며, 그 존재는 자유이자 책임, 그리고 파열 속에서의 사유로 구성된다.
결론적으로 『악마와 선한 신』은 장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을 극 형식 안에 구현한 대표작으로, 단순한 선악의 대립이 아닌, 인간이 자유롭게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지는 존재임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괴츠라는 인물은 선과 악을 모두 경험하며, 윤리와 신앙, 자유와 죄의식이라는 복잡한 개념들을 통과하면서 인간 존재의 불안정성과 복잡성을 극단적으로 체현한다. 이 희곡은 우리가 흔히 당연하게 여기는 도덕의 기원과 본질을 해체하고, 신 없는 세계에서 인간이 어떻게 의미를 구성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를 철저히 묻는다. 사르트르는 이 작품을 통해 철학적 사유를 무대 위로 끌어올렸고, 그 과정에서 인간을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라 ‘선택하고 책임지는 존재’로 재정의했다. 『악마와 선한 신』은 극의 형식과 철학의 내용을 깊이 있게 결합한 희귀한 작품으로, 독자에게는 철학적 도전으로, 관객에게는 실존적 거울로 기능한다. 선도 악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오직 자유로운 선택과 그 책임만이 존재할 뿐이며, 인간은 그 가운데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존재다. 이 작품은 그런 인간의 복잡하고 위태로운 조건을 가장 정직하게 그려낸 연극적 철학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