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시대 가장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한 왕 단종과 그를 끝까지 보필한 엄흥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설 연휴를 앞두고 관객들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역사적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단종의 유배 시절을 소재로 삼아, 감독의 상상력으로 채워진 이 작품은 흥행 가능성과 함께 아쉬움을 동시에 남기는 영화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유해진과 박지훈의 빛나는 배우 연기
'왕과 사는 남자'의 가장 큰 강점은 단연 주연 배우들의 연기력입니다. 유해진이 연기한 엄흥도는 전반부에서 다소 과장된 코미디 연기를 선보이지만, 중반부터는 안정적이고 깊이 있는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습니다.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각본과 연출의 한계를 뛰어넘는 감동적인 연기를 펼쳐 영화의 완성도를 끌어올립니다.
박지훈은 '약한 영웅'에서 보여준 연기가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합니다. 단종이라는 캐릭터는 무기력하게 권력에서 밀려나 유배를 당한 왕에서 시작하여, 여러 사건을 거치며 진정한 왕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박지훈은 특유의 사슴 같은 눈망울로 불안과 자괴감에 빠진 단종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점차 변화하는 캐릭터의 성장을 과장 없이 완벽하게 소화합니다. 아이돌 출신 배우라는 편견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유해진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연기를 선보인 것입니다.
유지태가 연기한 한명회는 영화 전체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역할을 합니다. 병치보다는 외모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백과 목소리의 압도적인 상품으로 순식간에 분위기를 장악합니다. 비질란테의 조헌과는 또 다른 간악하면서도 무시무시한 포스를 보여주며, 흐물흐물한 영화에 오롯이 혼자서 긴장감을 부여하는 역할을 훌륭히 수행합니다. 이들 세 배우의 발군의 연기가 없었다면 영화의 여러 단점이 더욱 두드러졌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장황준 감독의 연출 한계와 구조적 문제점
영화의 가장 큰 아쉬움은 장황준 감독의 연출에서 발견됩니다. 광해, 왕이 된 남자나 관상처럼 역사의 공백을 창의적으로 채울 수 있는 좋은 소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흥행 공식에만 급급한 도식적인 각본과 연출이 문제입니다. 영화는 개요정란을 일으켜 왕위를 탈취한 수양대군이 사육신을 잔인하게 고문하는 장면으로 시작하여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만, 곧이어 지나치게 가벼운 코미디로 전환되면서 균형을 잃습니다.
전반부는 적중률이 낮은 코미디와 억지스러운 상황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엄흥도가 이웃 마을 촌장으로부터 유배 온 고관대작을 잘 모시면 마을이 풍요로워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단종을 모시게 되는 과정은 코미디로 점철되어 있지만, 그 효과는 미미합니다. 일개 촌장에 불과한 인간이 왕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일갈하는 장면은 사극의 고질적인 병폐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감독의 선택과 집중 부재입니다. 단종의 변모와 애민 정신, 재물이 목적이었던 엄흥도의 변화, 두 사람의 관계 발전,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 계획, 한명회의 입보관찰 등 여러 이야기 요소가 산만하게 나열되어 있습니다. 정작 서사적으로 가장 공을 들여야 할 단종과 엄흥도 및 마을 사람들의 관계 발전은 하나의 큰 사건에만 의존한 채 대충 지나가 버립니다.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 제시도는 역사를 상당히 각색했음에도 불구하고 얼렁뚱땅 넘어가 버려 당혹감을 줍니다.
각본의 문제와 역사 각색의 아쉬움
영화의 각본은 여러 구조적 결함을 드러냅니다. 대사의 구차함이 대표적인데, 호랑이와 마주친 단종이 "네 상대는 나다"라고 외치는 장면은 지나치게 오글거립니다. 박지훈이 영혼을 담아 연기했기에 간신히 넘어갈 수 있었을 뿐입니다. 이준혁이 연기한 캐릭터 역시 이상한 대사를 내뱉으며 억지스러운 코미디를 보조하고, 박지환의 캐릭터는 오직 코미디를 위해 존재하는 듯 보입니다.
더미도가 연기한 공현은 비중으로 보나 분량으로 보나 존재감이 전무합니다. 남자 배우만 있으면 비난받을까 봐 억지로 넣은 티가 역력하며, 좋은 배우를 없어도 그만인 캐릭터로 전락시킨 것은 명백한 실책입니다. 정진욱이 연기한 캐릭터에게는 리바운드의 한 캐릭터와 마찬가지로 별 의미 없이 관객의 감정을 건드리려는 의도만 담긴 무용지물의 에피소드가 부여됩니다.
단종이 세상을 떠나게 되자 절대 시신을 거두지 말라는 세조의 엄명에도 불구하고 엄흥도라는 사람이 아들과 함께 몰래 단종의 시신을 묻었다는 것은 공식적인 기록으로 확인 가능합니다. 영화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시작과 끝을 정해두고 있지만, 그 사이의 공란을 채우는 방식이 효과적이지 못했습니다. 쓸데없는 코미디와 불필요한 상황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 단종과 엄흥도의 관계 변화와 단종의 성장 과정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면 훨씬 감동적인 영화가 되었을 것입니다.
'왕과 사는 남자'는 유해진, 박지훈, 유지태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덕분에 어느 정도의 흥행 성과는 거둘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나 좋은 소재와 훌륭한 배우들을 가지고도 각본과 연출의 한계로 인해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 아쉬움이 큰 작품입니다. 결말에서 눈물이 맺혔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배우들의 연기력 덕분이며, 더 나은 판단과 선택이 있었다면 500만 관객을 가볍게 넘길 수 있었을 영화라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남습니다.
[출처]
[왕과 사는 남자] 리뷰 – 유해진과 박지훈이 멱살 잡고 살린 영화/영상 채널명: https://youtu.be/DVJiS9Xxsu4?si=ZqBuJNGucfvSfMZ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