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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아이들의 우화와 종교, 권력 구조, 인간의 고통

by anmoklove 2026. 1. 5.

나지브 마흐푸즈의 『우리 동네 아이들(Children of the Alley)』은 아랍 문학사에서 가장 논쟁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작품 중 하나로, 종교와 권력, 정의와 고통, 인간의 구원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우화적 서사 구조 안에 담아낸 걸작이다. 이 작품은 겉으로는 카이로 빈민가의 한 골목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세습적 권력과 억압, 그리고 이에 맞서 싸운 인물들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은 아브라함 계통 종교의 중심 인물들—아담, 모세, 예수, 무함마드—을 각각 현대적 인물로 재현한 상징 구조를 갖는다. 작중 등장하는 '기발'은 신을, 그의 자식들은 선지자들을, 그리고 골목은 세계 그 자체를 상징한다. 각 시대의 '구원자'가 등장해 악을 물리치고 질서를 바로잡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부패와 억압이 반복된다는 이 순환적 구조는 인간 사회가 가진 구조적 비극성과 동시에 구원 불가능한 현실을 상징한다. 마흐푸즈는 이 작품을 통해 단순히 종교적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끊임없이 정의를 갈망하면서도 그것을 실현하지 못하고, 구원자를 기다리지만 그 구원조차 체제 속에 흡수되는 과정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본 리뷰에서는 『우리 동네 아이들』의 중심 사유를 세 가지 축—우화적 종교 구조와 상징 해석, 권력과 제도의 반복적 폭력성, 고통과 인간 구원의 문제—로 나누어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이 작품은 아랍 사회를 넘어 현대 세계가 직면한 정치적, 윤리적 딜레마를 다층적으로 조명하며, 문학이 어떻게 신화와 현실 사이에서 진실을 추구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 동네 아이들의 우화와 종교

『우리 동네 아이들』은 명시적으로 종교에 대해 말하지 않지만, 그 모든 장과 인물, 사건은 구약, 신약, 꾸란의 중심 이야기를 우회적으로 재현한다. 첫 장의 주인공 '아드함'은 아담의 상징이며, 그가 금단의 열매를 먹고 기발의 저택에서 쫓겨나는 장면은 에덴동산에서의 추방을 연상시킨다. 이후 '기발'의 자식으로서 등장하는 '지발', '리파아', '카심'은 각각 모세, 예수, 무함마드로 해석되며,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골목의 악과 부조리를 타파하려 하지만, 결국 그들 역시 시스템에 흡수되거나 죽음이라는 결말을 맞이한다. 이러한 구성은 단순한 상징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마흐푸즈는 인간이 매 시대마다 새로운 선지자, 새로운 구원자를 기다리며 반복되는 억압에 저항하지만, 체제는 언제나 그 저항을 흡수하거나 말살한다는 점을 우화적으로 드러낸다. 종교적 구원은 이상적으로 보이지만, 현실 정치와 만나면서 종종 그 본래적 이상을 잃고 체제화되는 과정을 비판적으로 그린다. 마흐푸즈는 이를 통해 신성모독적 논쟁에 휘말렸지만, 실제로 그는 종교의 본질을 훼손하기보다, 그것이 현실 권력과 만나면서 발생하는 왜곡을 고발하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각 장의 이야기가 서로 유사한 구조를 반복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선형적 발전이 아닌 순환적 반복의 구조를 통해, 인간 사회의 구조적 문제—즉 권력, 부패, 망각, 폭력—이 종교적 해답만으로는 극복될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따라서 이 작품은 단지 종교의 재현이 아니라, 종교 담론을 통해 인간 역사와 존재론적 갈등을 묻는 철학적 서사로 읽혀야 한다.

권력 구조

『우리 동네 아이들』은 구원자 개개인의 서사보다, 그들이 맞서는 ‘골목’이라는 공간에 주목해야 진면목이 드러난다. 골목은 단지 공간이 아니라, 체제 그 자체다. 기발이 처음으로 법과 질서를 세운 이후, 그의 후손들과 그들을 따르는 ‘무사’들은 언제나 억압과 착취를 반복한다. 각 장마다 등장하는 ‘구원자’—지발, 리파아, 카심 등—는 모두 정의와 자유, 평등을 외치며 등장하지만, 그들의 이상은 곧 조직적 폭력과 사회적 배반에 직면한다. 지발은 지혜로써, 리파아는 사랑으로, 카심은 전쟁과 행동으로 골목을 변화시키려 하지만, 결국 모든 개혁은 실패하거나 왜곡되며, 기존 권력을 넘어서지 못한다. 마흐푸즈는 이러한 반복을 통해 단순히 종교적 영웅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속성—즉 변화하는 척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본질적 억압 구조를 유지하는—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특히 작중 마지막에 등장하는 과학자 ‘아라프’의 서사는 매우 상징적이다. 그는 이전의 구원자들과 달리, 신이나 계시 대신 ‘지식’과 ‘이성’을 무기로 들고 나오지만, 그 역시 실패한다. 이는 마흐푸즈가 종교뿐 아니라, 계몽주의적 이성조차도 제도화된 권력 구조 속에서는 무력해질 수 있음을 경고하는 장면이다. 골목의 권력은 인격화된 악이 아니라, 관성적인 구조이며, 그 안에서 모든 구원은 체제에 흡수되거나 말살될 운명에 처한다. 이러한 구조적 폭력성은 현대 국가의 억압, 종교의 제도화, 민주주의의 형식화 등으로 확장되어 읽힐 수 있으며, 이는 『우리 동네 아이들』이 아랍 사회를 넘어 전 지구적 독자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의 고통

이 소설은 구원자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그 구원이 실패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비극이다. 골목은 언제나 고통으로 시작되고, 고통으로 끝난다. 억압받는 민중은 구원자를 기다리고, 일시적 희망이 움트지만, 체제는 다시 부활하고 고통은 반복된다. 마흐푸즈는 이 고통을 영웅적 서사로 치환하지 않는다. 그는 이집트의 골목이라는 구체적 공간을 통해, 인간의 일상 속 고통과 절망을 현실적으로 묘사하며, ‘해결되지 않는 비극’의 구조를 고발한다. 이 점에서 『우리 동네 아이들』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등장하는 이반의 논리—“아이가 고통받는 세상이라면, 나는 그런 신을 거부하겠다”—를 연상시킨다. 마흐푸즈의 세계에는 신은 존재하되 침묵하고, 정의는 존재하되 실현되지 않으며, 구원자는 등장하되 언제나 패배한다. 이러한 세계관은 무신론적 비관주의가 아니라, ‘신은 있으나, 인간 사회의 구조가 그 뜻을 이뤄내지 못한다’는 좌절의 인식에 가깝다. 고통은 체제적이며 반복되며, 인간은 그 안에서 무기력하다. 이 모든 상황에서 마흐푸즈가 궁극적으로 말하려는 바는, 종교적 구원도, 이성적 해결도, 영웅적 행동도 모두 실패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인식한 이후에야 비로소 ‘진정한 인간다움’이 시작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그래서 비극이지만, 냉소적인 작품은 아니다. 고통이 반복되는 현실을 날카롭게 고발하면서도, 그 고발 자체를 통해 독자가 스스로 사고하고 윤리적 감수성을 회복하게 만든다. 이는 마흐푸즈가 문학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진정한 구원의 방식이며, 문학의 윤리적 소명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나지브 마흐푸즈의 『우리 동네 아이들』은 단순히 아랍 세계의 사회적 불의를 고발하는 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의 구조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구원과 억압, 정의와 부패를 반복하는지를 우화적으로, 철학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탐색한 깊이 있는 서사이다. 이 작품은 종교적 상징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 갈등을 형상화하고, 모든 시대의 독자에게 ‘우리는 왜 끊임없이 고통을 반복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고통은 반복되지만, 구원은 항상 실패하지만, 그 질문을 멈추지 않는 인간의 존재가 바로 문학이 다루어야 할 진실임을 마흐푸즈는 보여준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금서가 될 수밖에 없었던 정치적 날카로움을 지닌 동시에, 문학이 가장 깊은 곳에서 던질 수 있는 윤리적 성찰의 질문을 간직한 작품이다.

우리 동네 아이들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