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20세기 초 미국의 물질주의와 허상을 날카롭게 해부한 고전으로, 개인의 욕망과 이상이 어떻게 사회적 현실과 충돌하며 파괴되는지를 정밀하게 묘사한 소설이다. 1925년에 출간된 이 작품은 당시 재즈 시대의 부와 사치, 계층 상승의 열망, 그리고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환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주인공 제이 개츠비는 극단적인 성공을 통해 과거의 사랑을 되찾고자 하는 인물로, 그의 삶은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그 이면에는 깊은 고독과 자기기만이 존재한다. 이 소설은 단순한 러브 스토리가 아니라, 한 사회의 정신적 구조를 비판하고, 인간 내면의 욕망과 허무를 탐구하는 작품이다. 본 승인글에서는 ‘아메리칸 드림’, ‘사랑이라는 환상’, ‘정체성과 허무’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분석하고, 그 현대적 함의를 짚어본다.
위대한 개츠비 의 아메리칸드림
개츠비는 위대한 부를 축적한 인물로, 매주 성대한 파티를 열며 세간의 이목을 끌고 살아간다. 그는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재산을 모았고, 사람들은 그의 과거에 대해 수많은 소문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개츠비의 삶의 목적은 단 하나, 과거의 연인이었던 데이지를 다시 얻는 것이다. 이 단순한 목표는 그 자체로 매우 로맨틱해 보일 수 있지만, 실상은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허상을 쫓는 비극적인 여정으로 드러난다.
피츠제럴드는 개츠비를 통해 아메리칸 드림의 이중성을 드러낸다. 이상적으로는 누구나 노력과 열정으로 사회적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꿈이지만, 실제로는 그 과정이 도덕적 타락과 기만, 불평등한 구조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개츠비의 삶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개츠비는 노력으로 부를 쌓았지만, 그 배경에는 범죄와 불법적 거래가 있으며, 상류층은 여전히 그를 ‘속물’로 취급한다. 그는 동부 상류층과는 본질적으로 다르고, 아무리 부를 축적해도 그들의 세계에 완전히 들어갈 수 없다. 이는 아메리칸 드림이 단지 경제적 성공이 아니라, ‘계급의 고정성’을 은폐하는 신화일 뿐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개츠비의 집이 있는 ‘웨스트 에그’와 데이지가 사는 ‘이스트 에그’의 대비는 상징적이다. 전자는 새로 부를 축적한 신흥 부유층의 공간이며, 후자는 세습된 부를 가진 구 상류층의 세계다. 개츠비는 이스트 에그의 세계로 진입하고자 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그의 죽음 이후, 그가 수없이 초대한 사람들은 장례식에도 오지 않는다. 개츠비의 인생은 아메리칸 드림의 환상을 철저히 살아낸 자의 몰락이며, 그 실패는 개인의 한계가 아니라, 그 꿈 자체의 모순을 반영한다.
환상
개츠비가 모든 것을 바쳐 되찾으려 했던 데이지는 과연 그럴 만한 존재였는가? 이는 독자들이 위대한 개츠비를 읽으면서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 중 하나다. 데이지는 분명 아름답고 매혹적인 인물이지만, 그녀는 상류층의 안락한 삶을 포기하지 못하고, 개츠비를 사랑했음에도 결국 그를 선택하지 않는다. 피츠제럴드는 데이지를 단순한 ‘배신자’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그녀대로 사회 구조의 희생자이며, 동시에 자신의 선택을 통해 비극을 야기한 인물이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과거의 시간을 되돌리려는 욕망을 사랑한 것이다. 그는 말한다. “과거는 되살릴 수 없어? 물론 되살릴 수 있지!” 이 문장은 그의 삶의 전부를 설명한다. 그는 데이지와 함께했던 과거의 시간, 사랑의 기억, 청춘의 정열을 현재로 다시 가져오고자 한다. 그러나 데이지는 시간이 흐른 현실의 인물이며, 그 시절의 순수함은 이미 사라졌다. 개츠비는 그녀를 실제 인간이 아닌, 이상화된 존재로 바라보았고, 결국 그 이상이 현실과 충돌하면서 비극은 발생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이 소설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것은 대부분의 경우 실현되지 않거나 왜곡된 방식으로 나타난다. 닉과 조던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서로에게 끌리지만, 끝내 함께하지 않는다. 이처럼 위대한 개츠비 속의 사랑은 언제나 무언가 부족하고, 완전하지 않으며, 때로는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에 대한 회의가 아니라, 인간이 사랑을 대하는 방식—이상을 투사하고, 현실을 왜곡하는 태도—에 대한 비판이다. 데이지는 개츠비의 꿈이었지만, 그녀는 실제로는 꿈을 지탱할 수 없는 현실의 인물이었다.
허무한 욕망
소설의 화자 닉 캐러웨이는 외부인으로서 이야기를 바라보지만, 동시에 깊숙이 그 세계에 들어가 있는 관찰자다. 그는 개츠비의 삶을 지켜보고, 그의 진심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인물이며, 독자는 그의 시선을 통해 개츠비뿐 아니라 1920년대 미국 사회 전체를 바라보게 된다. 닉은 처음에는 중립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점차 그 세계의 허위와 공허함에 환멸을 느낀다.
닉은 개츠비의 정체성을 복잡하게 느낀다. 개츠비는 진짜 이름도, 과거도 숨기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의 정체성은 자신이 창조한 이야기들 위에 세워진 것이며, 그것은 곧 무너질 수밖에 없는 허상이다. 그러나 닉은 바로 그 허상 속에서 진정한 감정을 발견하고, 개츠비를 ‘위대하다’고 평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거짓된 인생을 산 듯한 인물이 가장 진실한 열망을 가졌다는 점에서, 닉은 개츠비를 단순히 실패한 사기꾼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개츠비의 순수함—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그 의지—를 높이 평가하며, 그러한 진심이야말로 시대의 부패 속에서 가장 빛나는 가치라고 본다.
소설 후반부에서 닉은 동부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이는 단지 지리적 이동이 아니라, 그가 속했던 세계에 대한 명백한 거부이다. 그는 동부의 상류층 문화, 그 허위와 자기기만, 도덕적 무관심에 환멸을 느끼며, 개츠비처럼 이상을 좇는 이들이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에 절망한다. 개츠비의 죽음은 단순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이상을 품은 인간이 현실의 냉혹함에 짓밟히는 사회 구조의 비판이다.
결국 위대한 개츠비는 단순한 ‘미완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한 시대가 품었던 이상과 그 이상이 어떻게 왜곡되고 파괴되었는가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이며, 동시에 그 속에서도 인간이 품을 수밖에 없는 꿈과 그 꿈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이다. 피츠제럴드는 화려함과 타락, 사랑과 환멸, 희망과 죽음이 교차하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 각자가 가진 욕망의 본질을 돌아보게 만든다. 위대한 개츠비는 바로 그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끝까지 붙잡고 있었기에, ‘위대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