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장편소설 의지와 운명은 개인의 자유 의지와 역사적 운명, 지식인의 존재 이유를 통합적으로 다루는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거대한 철학적 실험이다. 푸엔테스는 이 소설에서 인간 존재가 처한 근원적 질문—‘나는 누구인가’, ‘내 삶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책임을 지고 살아야 하는가’—에 문학적이고 역사적인 방식으로 접근한다. 이야기는 멕시코 지식인인 호라시오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그의 삶은 단순한 개인의 전기적 기록이 아니라, 20세기 중남미 사회의 역사, 정치, 사상, 윤리의 격류 속을 관통하는 하나의 인식적 궤적으로 제시된다. 푸엔테스는 호라시오의 삶을 통해 '의지'라는 개인의 능동성과 '운명'이라는 집단적, 역사적 필연성이 어떻게 교차하며 인간의 정체성을 형성하는지를 보여준다. 본 분석에서는 이 작품을 세 가지 축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첫째, 자유 의지와 사회 구조의 충돌. 둘째, 역사와 기억의 상호작용. 셋째, 지식인의 윤리적 책임과 사상의 정치성.
의지와 운명 속 자유의지
의지와 운명에서 가장 먼저 도드라지는 질문은 '개인은 과연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가'이다. 푸엔테스는 호라시오의 생애를 통해 인간이 자신의 의지로 삶을 개척하고자 할 때, 그것이 어떻게 역사적 맥락과 사회적 구조에 의해 제약받고, 때로는 왜곡되는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호라시오는 멕시코 사회의 상류층 가문 출신으로, 유럽과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지식인으로 성장한다. 그는 자신이 가진 지성과 도덕적 이상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명감을 지닌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삶은 개인의 선택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사건들과 충돌하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게 된다.
호라시오의 삶에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들이 등장한다. 그는 젊은 시절 이상주의적 사상에 경도되며 혁명적 운동에 참여하지만, 그 이상은 현실의 정치 권력과 충돌하면서 궤도를 이탈한다. 그는 사랑을 선택하지만, 그 사랑은 사회적 지위와 계급의 벽에 부딪혀 파국으로 치닫는다. 그는 진실을 말하려 하지만, 그 진실은 종종 체제의 폭력 속에서 왜곡된다. 이처럼 그의 모든 선택은 철저히 자율적이며 주체적인 듯 보이지만, 결국 거대한 역사적 구조와 문화적 질서 속에서 예측 불가능한 결과로 이어진다.
푸엔테스는 이와 같은 삶의 궤적을 통해 '자유 의지'의 한계를 묘사하는 동시에, 그 한계를 넘어서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제시한다. 인간은 단지 구조의 산물이 아니라, 그 구조에 대한 인식과 저항, 그리고 실천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창조할 수 있는 존재다. 호라시오는 좌절과 실패 속에서도 글을 쓰고, 사랑을 기억하며, 과거를 복기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실존적 의지를 끝내 포기하지 않는다. 이는 푸엔테스가 주장하는 '의지와 운명'의 변증법적 관계, 즉 운명은 의지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고, 의지는 운명을 통해 더욱 선명해진다는 사유의 실현이다.
역사와 기억
의지와 운명은 한 개인의 삶을 통해 라틴 아메리카의 현대사를 서술한다. 이는 전통적인 ‘역사 소설’의 한계를 넘어서, 역사 그 자체가 한 개인의 기억 속에서 어떻게 재구성되고 재현되는지를 보여주는 기억의 서사로 기능한다. 호라시오는 단순한 역사적 방관자가 아니라, 그 시대의 산증인이며, 동시에 역사의 희생자이자 창조자다. 그는 멕시코 혁명, 냉전 체제, 미국의 제국주의, 유럽 지식인의 몰락 등 수많은 사건들을 통과하며, 그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새롭게 정의해야 했다.
푸엔테스는 이러한 역사와 개인의 교차점을 '기억'이라는 장치를 통해 문학적으로 구현한다. 호라시오는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때로는 그것을 미화하고, 왜곡하며, 반복적으로 해석한다. 이 과정은 단순한 자기반성이 아니라, 역사의 폭력성과 주관성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내포한다. 우리는 기억을 통해 과거를 재구성하지만, 그 기억은 결코 객관적일 수 없다. 푸엔테스는 이를 통해 역사라는 것이 단지 날짜와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상처, 망각과 회한이 얽힌 살아 있는 텍스트임을 보여준다.
특히 푸엔테스는 ‘시간’에 대한 인식에서 독특한 서사적 실험을 감행한다. 의지와 운명에서는 시간의 선형적 흐름이 자주 중단되고, 회상과 상상이 중첩되며, 현재와 과거가 끊임없이 교차한다. 이러한 구성은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능케 하며, 독자로 하여금 사건의 인과가 아닌, 감정과 사유의 층위에서 서사를 받아들이도록 한다. 푸엔테스에게 있어 진정한 역사는 기록된 연대기가 아니라, '기억되고 해석된 과거'이며, 이는 문학만이 가능하게 만드는 진실이다.
지식인
의지와 운명의 가장 중심적인 문제의식 중 하나는 '지식인이란 무엇인가'이다. 호라시오는 문학과 철학, 정치에 정통한 지식인으로 등장하지만, 그는 단지 관찰자나 해설자가 아니라, 행동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러나 그 행동은 언제나 윤리적 딜레마와 맞물려 있으며, 그로 인해 그는 끊임없이 고통받는다. 푸엔테스는 호라시오를 통해, 지식인이 권력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사상은 현실과 어떤 접점을 가져야 하는지를 질문한다.
호라시오는 지식인으로서 언어의 무력함과 동시에 그 힘을 모두 경험한다. 그는 진실을 말하려 하지만, 체제는 그것을 검열하거나 왜곡한다. 그는 문학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하지만, 독자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외면한다. 이처럼 그의 언어는 언제나 실패와 오해, 침묵의 위험을 동반한다. 하지만 푸엔테스는 바로 그 실패의 과정 속에서 지식인의 윤리적 가치를 발견한다. 진정한 지식인은 침묵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며, 언제나 권력과 거리를 두고 진실을 탐색하려는 존재라는 것이다.
특히 푸엔테스는 지식인의 ‘정치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모든 언어와 사상이 이미 정치적 현실 속에 자리 잡고 있으며, 중립이란 환상에 불과하다고 본다. 의지와 운명 속 지식인은 세상과 불화를 겪고, 이념과 신념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그 흔들림 속에서 말하고, 쓰고, 행동한다. 이는 이상적인 인간형이 아니라, 지극히 인간적인 존재이며, 그 인간성 속에 윤리적 책무가 자리하고 있다.
푸엔테스가 그리는 지식인은 구세주도, 예언자도 아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해야 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태도는 오늘날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다시금 질문하게 하며, 지식인의 실천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유도한다. 푸엔테스는 문학이 단지 미학적 실험이 아니라, 현실에 개입하고, 사회적 발언을 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함을 강하게 주장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