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개봉한 토드 필립스 감독의 '조커'는 DC 코믹스의 대표적 빌런을 완전히 새롭게 해석한 작품입니다.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한 아서 플렉은 잭 니콜슨이나 히스 레저의 조커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관객들에게 다가옵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히어로 무비를 넘어 현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날카롭게 파헤치는 예술영화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호아킨 피닉스가 창조한 새로운 조커의 탄생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는 역대 어떤 조커보다도 슬프고 비참합니다. 잭 니콜슨이 코믹스의 조커를 그대로 스크린으로 옮겨온 경이로운 연기를 보여줬고, 히스 레저가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혼돈의 화신을 펼쳐냈다면, 호아킨 피닉스는 광인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그의 연기는 감탄을 넘어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특히 화장실에서 춤을 추는 장면이나 앙상한 등을 드러낸 모습은 관객들의 넋을 잃게 만드는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아서 플렉이라는 인물은 병적인 웃음 증상을 가진 채 어머니 페니 플렉과 함께 힘겹게 살아가는 광대입니다. 그를 둘러싼 세상은 배려가 없고 예의가 없습니다. 10대 청소년들에게 강도를 당하고, 직장 동료로부터 받은 권총은 그에게 작은 투쟁의 수단이 됩니다. 이 권총이라는 소품은 영화 전반에 걸쳐 중요한 상징으로 작용합니다. 과거 시민들이 창을 들고, 화염병과 최루탄을 사용했듯이, 현대의 저항 수단이 권총으로 표현되는 것은 이 영화가 얼마나 위험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지하철에서 세 명의 남자들을 살해하는 장면은 영화의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놀랍게도 아서는 살인을 저지르는 동안 웃음을 터뜨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냉정하고 엄숙한 심판자와도 같은 모습을 보입니다. 그는 아무런 죄책감도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의 행동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처음으로 받게 되는 관심, 그토록 원하던 스포트라이트가 비로소 그를 비추기 시작한 것입니다.
배트맨 빌런을 넘어선 사회의 괴물
이 영화가 기존 배트맨 시리즈와 다른 점은 조커를 단순한 빌런이 아닌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로 그려낸다는 것입니다. 토머스 웨인과 머리 프랭클린이라는 두 명의 '아버지 상'은 아서에게 희망이자 동시에 절망입니다. 어머니 페니 플렉의 과대망상으로 인해 아서는 토머스 웨인이 자신의 아버지라고 믿게 되지만, 웨인 저택을 찾아가 만난 토머스는 차가운 비웃음과 함께 "돈이 필요하냐"는 말만 던집니다.
진정한 아버지 상이라 할 수 있는 토크쇼 진행자 머리 프랭클린은 아서가 존경하고 동경하던 인물입니다. 스탠딩 코미디언이 되고자 했던 아서의 꿈은 머리 프랭클린처럼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방송에서 아서를 비웃고 조롱했습니다. 병원에서 확인한 서류를 통해 아서는 자신에게 진짜 아버지란 존재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어머니로부터 학대를 당했다는 진실을 발견합니다.
영화는 계속해서 미국 사회의 병폐를 건드립니다. 고담시는 행정의 공백으로 치안이 엉망이 되고, 길에는 쓰레기가 쌓이며, 황량하기만 한 도시의 모습이 압도적으로 펼쳐집니다. 계급 간의 차별, 소외된 이웃의 문제, 극빈층의 삶, 아동학대, 총기 살인과 같은 문제들이 끊임없이 제시됩니다. 이런 환경에서 탄생한 괴물이 바로 조커임을 영화는 숨기지 않습니다. 실제로 많은 평론가들은 이 영화가 같은 해 개봉한 '기생충'과 유사한 지점이 많다고 분석합니다. 피카레스크적 요소, 하층민이 주인공이라는 점, 예술영화와 상업영화의 경계에 있다는 점에서 두 작품은 닮아 있습니다.
광대 분장을 한 시위대의 살인이 하나의 상징이 되고, 처음으로 아서는 자신의 행동이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대립 구조는 명확합니다. 토머스 웨인으로 대표되는 기득권층은 광대의 살인을 처단해야 할 악으로 규정하지만, 빈민층은 이를 지지합니다.
사회비판적 메시지와 논쟁적 완성도
조커의 마지막 장면은 전율을 느끼게 합니다. 히스 레저의 조커가 자신의 행동과 이념, 비전을 설명하기를 좋아했던 것과 달리,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지지하는 대중들 앞에서 그는 단지 포즈를 취할 뿐입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환호받고,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군중을 움직일 수 있는 혼돈의 광대가 탄생한 순간입니다.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그를 비추고 군중이 환호하는 장면에서, 그토록 원하던 스포트라이트를 마침내 받게 된 아서의 모습이 완성됩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조커의 탄생과 동시에 배트맨이 탄생하는 순간을 포착한 것입니다. 광대 가면을 쓴 시위대가 날뛰는 가운데 영화를 보러 간 웨인 부부가 총에 맞아 죽고, 어린 브루스 웨인은 부모의 죽음을 목격합니다. 한쪽에서 환호받는 혼돈의 화신이 태어날 때, 구석 골목길에서는 충격과 함께 배트맨이 태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둘이 운명의 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완벽하게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논쟁적입니다. 일부 관객들은 너무 날것이라서 보기 불편하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극단적으로는 유혈 장면에 거부감을 느끼고 중간에 극장을 나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무겁고 악으로 점철된 꿈도 희망도 없는 내용 때문에 "배트맵과 함께 하지 않은 조커는 버겁다"며 낮은 평점을 매긴 해외 매체들도 있었습니다. 예술영화에 가까운 작품임을 인지하지 못한 채 영화를 본 관객들은 실망감을 표했고, CGV 에그지수가 개봉 일주일 후 89%까지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머리 프랭클린을 생방송 중에 살해하는 장면은 방송국의 탐욕을 비판합니다. 방송국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 다시 한 번 아서를 비웃고 조롱할 속셈으로 그를 초대했지만, 그 탐욕과 오만함이 조커를 무대에 올려놓는 상황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결국 이 이야기는 정신분열증에 걸린 미치광이 범죄자가 세상을 뒤흔든 사건을 그린 것이며, 사회가 혼란하고 위험할수록 이런 범죄자들은 더욱 위협적으로 보이게 됩니다.
토드 필립스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의 문제를 지적합니다. 계급 간의 갈등, 정신 건강 서비스의 부재, 총기 규제 실패 등 미국 사회의 상처를 다시 수술하듯 파헤칩니다. 아서에게 필요했던 것은 단지 작은 배려였습니다. 그의 손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줄 누군가, 그의 초라한 모습을 바라봐 주고 응원해 줄 한 명의 사람만 있었어도 그는 조커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영화의 연출, 촬영, 음악, 미술, 연기 모든 면에서 부족함을 찾기 힘든 수작입니다. 다만 결말 부분에서 조커가 병원에서 탈출하는 장면을 넣은 것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립니다. 후속작을 위한 장치로 보이지만, 이완적인 느낌으로 이야기를 다소 망친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조커의 탄생과 엉망이 되어버린 고담, 그리고 광대 가면을 쓴 사람들이 의미하는 것을 한 번 더 제시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다시 보고 싶은 영화 1순위로 꼽힐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높이 평가받을 작품입니다.
[출처]
세상을 향한 이 광대의 비웃음이 처절하게 느껴지는 이유...: 조커 리뷰 / 라인의 컬쳐쇼크: https://youtu.be/TIm-QOkb4XY?si=cfR7dFy396lI5lX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