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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지 않는 기사 칼비노, 정체성, 이탈리아 문학

by anmoklove 2025. 11. 30.

존재하지 않는 기사 표지

이탈로 칼비노는 20세기 후반 이탈리아 문학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꾼 작가 중 하나로, 리얼리즘에서 시작해 환상과 실험, 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을 넘나들며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한 작가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존재하지 않는 기사는 단순한 중세 모험담을 넘어서 인간 정체성, 존재의 의미, 역할과 본질의 관계를 탐구하는 철학적 우화다. 이 작품은 ‘존재하지 않는’ 아질팔이라는 기사를 중심으로 인간이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자신은 누구인지 끊임없이 묻는 실존적 문제를 제기한다. 칼비노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 모두가 입고 있는 갑옷, 즉 사회적 껍데기의 허상을 드러내며, 그 껍데기 안에 진짜 ‘나’는 존재하는가를 독자에게 질문한다.

칼비노의 문학 세계

이탈로 칼비노(1923~1985)는 전쟁 이후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문학의 대표 주자로 데뷔했으나, 곧 그 틀을 벗어나 상상과 구조의 실험을 통해 독자와 소통하는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했다. 존재하지 않는 기사는 칼비노의 ‘우리 조상들’ 삼부작 중 하나로, 다른 두 작품인 나뉜 남자, 나무 위의 남자와 함께 인간의 조건을 우화적으로 탐색하는 연작이다. 세 작품 모두 인간 내면의 분열, 정체성의 위기, 사회적 역할과 개인적 자아 사이의 긴장을 주제로 삼고 있지만, 그 표현 방식은 매우 경쾌하고 기발하며 풍자적이다.

존재하지 않는 기사는 중세 십자군 전쟁이라는 배경 속에 펼쳐지지만, 칼비노는 이 배경을 리얼하게 묘사하기보다는 상징의 무대로 활용한다. 그는 기사 아질팔을 통해 ‘존재하지 않지만 역할은 수행하는’ 존재를 창조함으로써 현대인의 실존적 고뇌를 보여준다. 칼비노에게 문학은 단지 이야기를 전하는 수단이 아니라, 현실과 허구, 존재와 부재, 본질과 형식의 경계를 실험하는 무대다. 그는 독자에게 ‘이야기의 구조를 통해 어떻게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던지며, 문학의 형식 자체를 철학적으로 탐구한다.

존재하지 않는 기사는 이러한 칼비노의 실험정신이 본격적으로 발현된 작품으로, 겉으로는 유쾌하고 판타지적이지만, 그 속에는 존재론적 질문과 현대인의 자기 소외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담겨 있다. 칼비노는 고전적인 기사 문학의 문법을 따르되, 그것을 완전히 전복함으로써 고정된 의미에 도전하며, 문학의 자유와 유희를 만끽하는 동시에 독자에게 철학적 사유의 여지를 남긴다.

존재하지 않는 기사 줄거리와 상징: 껍데기 속의 기사, 정체성 탐색

존재하지 않는 기사의 주인공은 아질팔이라는 기사이다. 그는 신성 로마 제국의 기사로서 완벽한 규율과 훈련, 순수한 신념으로 무장하고 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안에는 ‘실체’가 없다. 그는 갑옷 안에 몸이 없는, 말 그대로 ‘존재하지 않는’ 기사이며, 오직 명령과 규율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그의 존재는 곧 ‘껍데기’이며, 그 자신조차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와 대비되는 인물로는 게루슐리나 수녀가 있다. 그녀는 이 이야기를 서술하는 인물이자, 과거에는 여성 전사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그녀의 존재는 과거와 현재, 성과 젠더, 신념과 회의 사이에서 끊임없이 변한다. 또 다른 인물인 라몽도는 아질팔의 갑옷을 실제로 입고 ‘기사’로 살아가며,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에 휩싸인다. 이러한 인물들 간의 관계와 대조를 통해 칼비노는 인간이란 껍데기로 규정될 수 없는 존재이며, 규범과 역할 너머에 진짜 자아가 존재하는지를 묻는다.

작품 전체는 중세의 기사 문학 양식을 빌리되, 그 서사구조를 철저히 해체한다. 주인공은 영웅적이지 않고, 사건의 전개는 고전적인 갈등과 해결을 따르지 않으며, 심지어 결말도 열린 형태로 남겨진다. 칼비노는 이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정체성’과 ‘자기 존재’라는 개념이 얼마나 허구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아질팔은 존재하지 않지만 모든 규범을 완벽히 수행한다. 그는 어떤 의미에서는 ‘이상적 인간’이며, 동시에 ‘비인간적 존재’다. 이런 이중성은 독자로 하여금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 내가 지금 수행하고 있는 역할은 나의 진짜 모습인가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또한 작품 곳곳에 배치된 유머, 풍자, 자조적 언어는 이 철학적 우화를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 칼비노는 독자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지되, 그것을 무겁게 표현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벼움 속에 진중함을 담아, 문학적 깊이를 배가시킨다. 이는 칼비노의 가장 큰 문학적 특성이자 강점이다.

이탈리아 문학

존재하지 않는 기사는 단지 중세를 배경으로 한 철학적 우화가 아니다. 이 작품은 현대 사회, 특히 후기 산업사회 또는 정보화 사회 속에서 개인이 겪는 정체성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오늘날의 인간은 끊임없이 역할을 수행한다. 회사에서는 직원, 집에서는 부모, SNS에서는 팔로워와 인플루언서, 법적으로는 시민, 정치적으로는 유권자.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정체성을 ‘연기’하며 살아간다.

아질팔은 이러한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그는 실체가 없지만 역할은 완벽히 수행한다. 그가 하는 일은 모두 사회적 기대에 부합하며, 그는 그 안에서 흔들림 없이 행동한다. 하지만 그 안에는 자아가 없다. 이는 오늘날의 인간이 겪는 ‘자기 소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우리는 타인의 기대에 맞춰 살아가지만, 정작 스스로에게 “나는 누구인가?”를 물으면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없다. 존재하지 않는 기사는 바로 이런 ‘자기 없음’의 상태를 극단적으로 형상화한 인물이다.

또한 칼비노는 이 작품을 통해 규범의 폭력성에 대해서도 시사한다. 아질팔은 규범을 어기지 않기 위해 인간성을 버린다. 그는 감정도, 의지도 없이 명령대로 움직이는 존재이며, 그 안에는 자유의지가 없다. 이는 마치 현대의 관료제나 군대, 대기업 시스템 속에서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인간의 모습과 닮아 있다. 우리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완벽한 시스템’은 사실 인간성을 말살하는 도구일 수 있으며, 그 안에서 인간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된다.

게루슐리나 수녀와 라몽도와 같은 인물들은 이러한 시스템 바깥에서 ‘진짜 나’를 찾으려는 시도를 상징한다. 그들은 규범과 싸우고, 신념과 회의 사이를 오가며, 끝내 ‘삶’의 의미를 자기 언어로 정의하려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으며, 때로는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혼란을 동반한다. 칼비노는 이 불편한 과정을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독자에게 그 혼란 속에서야말로 인간이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고 말한다.

결론: 우화적 서사

존재하지 않는 기사는 중세의 갑옷을 입은 척 하면서도, 실은 철저하게 현대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칼비노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이 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든, 그 안에 진짜 ‘나’가 존재하는지를 묻는다. 아질팔은 완벽한 기사로 보이지만, 그는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실수를 하고 갈등을 겪고 방황하는 인물들은 ‘살아 있다.’ 이 대비는 인간 존재의 본질이 실수와 불완전함, 갈등 속에 있음을 역설한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가 매일 수행하는 역할은 우리의 본질을 대변하는가? 아니면 그저 하나의 껍데기에 불과한가? 존재하지 않는 기사는 이 질문을 날카롭고도 유쾌하게 던지며,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삶과 정체성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이 작품은 단지 소설이 아니라, 현대인의 실존을 비추는 우화적 거울이다. 그래서 이탈로 칼비노의 문학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읽혀야 할 고전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