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앤커의 중국신화전설은 중국 고대 신화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문헌학적, 역사문화학적으로 해석한 대표적 저작으로, 방대한 자료와 날카로운 분석을 통해 중국 신화가 단순한 신비적 이야기의 집합이 아니라 중국인의 사고방식과 집단적 무의식을 반영한 거대한 사유체계임을 드러낸다. 이 책은 단순한 이야기 모음집이 아니라, 중국의 형이상학, 우주론, 인간관, 정치의식, 자연관, 성 역할 등 다양한 철학적 사유와 연결된 신화 구조를 분석하고 있으며, 서양 중심의 비교신화학이 간과해온 동아시아 신화의 독창성과 깊이를 보여주는 중요한 작업으로 평가받는다. 위앤커는 『산해경』, 『초사』, 『사기』, 『후한서』, 민간 설화와 도교 문헌까지 아우르며 고대 신화를 종합하는데, 각 신화의 변형과 중첩, 시대에 따른 의미 변환을 정밀하게 추적한다. 본 리뷰에서는 이 책이 구축한 중국 신화체계의 특징, 동아시아 문화기원의 해석 방식, 그리고 신화 연구의 현대적 의미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작품을 분석하고자 한다.
중국신화전설의 신화체계
위앤커는 중국신화전설에서 중국 신화의 가장 큰 특징으로 '역사화된 신화'의 경향을 들며, 이는 신화적 인물이 실제 역사 속 인물처럼 서술되는 중국 특유의 서사 전개 방식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황제, 염제, 공공, 치우 같은 인물은 신화적 속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중국 고대사의 군주로 자리매김되며, 정치적 정당성과 문화적 기원의 상징으로 활용된다. 이러한 특징은 신화와 역사의 경계가 흐려진 구조를 형성하며, 이는 이후 중국 사서의 서술 방식에도 깊은 영향을 끼친다. 위앤커는 이를 신화의 '퇴화'가 아니라, 문화 내적인 '통합 전략'으로 해석하며, 중국 신화의 특이성으로 강조한다. 또한 중국 신화는 창세 신화, 영웅 신화, 자연신 신화, 여성 신화 등 다양한 분류 아래 존재하며, 각각이 다층적인 문화코드를 내포하고 있다. 반고의 개천 설화, 여와의 인간 창조와 하늘 수선, 복희의 괘도 창조와 제사 제도의 형성, 곤과 우의 치수 신화는 단지 신비로운 이야기 그 자체가 아니라 당시 중국 고대 사회의 환경, 정치 질서, 자연관을 반영하는 구조적 은유다. 특히 여신의 위상은 주목할 만하다. 여와, 서왕모, 파모 등은 단순한 모성적 존재가 아니라 시간, 질서, 생명의 근원으로 기능하며, 이는 서구 신화에서 여성신이 주변화된 것과 대조된다. 위앤커는 신화를 단일한 기원 신화로 보지 않고, 복수의 층위가 공존하며, 다양한 지역과 부족의 신앙이 통합되거나 변형되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문화기원
위앤커는 중국신화전설에서 신화를 단순한 민간 이야기의 모음이 아니라, 동아시아 문명기원의 핵심 텍스트로 제시한다. 특히 그는 고대 신화에 나타나는 우주론과 정치 질서의 구조적 유사성에 주목한다. 반고가 하늘과 땅을 나누고 죽으면서 그 육체가 자연이 된다는 이야기는, 인간과 자연의 동일성과 순환적 세계관을 드러낸다. 이는 선형적 시간 개념보다 순환과 조화를 중시하는 동양 철학과도 맥을 같이한다. 또한 여와가 천을 꿰매 하늘을 고치는 장면은 단순한 신화가 아니라, 질서가 붕괴된 세계를 다시 회복하는 여성 창조자의 메타포로 작동한다. 위앤커는 이런 이야기들을 당대 정치 이념과 연결지으며, 신화가 정통성 확립과 천명사상, 왕권 신화 형성에 어떻게 이용되었는지를 분석한다. 예컨대 치우와 황제의 전쟁 신화는 단순한 부족 간 전쟁 이야기가 아니라 중원 중심주의 질서가 형성되는 과정을 서사화한 것으로 해석된다. 신화 속 황제는 무력과 지혜, 천명의 상징으로 기능하며, 후대 유교적 질서의 기반이 된다. 이처럼 신화는 우주론, 자연철학, 정치이념의 기초 구조를 제공하며, 중국 문화 특유의 질서중심 세계관과 천인합일 사상의 뿌리를 형성한다. 위앤커는 이를 통해 신화가 단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 문화정체성의 근원이며, 민족서사의 기초임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또한 그는 신화를 시대별로 변형되는 ‘살아있는 구조’로 보며, 후대의 해석이 어떻게 원형을 재구성했는지 추적함으로써 역사비평적 통찰을 제공한다.
해석사
중국신화전설의 가장 큰 의의는 신화를 오늘날 인문학적, 문화정체성의 문맥에서 재해석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데 있다. 위앤커는 문헌학자이자 사상사 연구자로서 신화를 역사적 산물로 고찰하면서도, 그것이 단지 고대의 산물이 아닌 현재의 인식을 구성하는 상징체계임을 강조한다. 그는 민간 설화와 정사(正史), 도교 문헌과 민속 종교 신앙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며, 하나의 신화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고 재배치되는지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서왕모는 초기에는 죽음과 산의 여신으로, 이후 도교 체계에서는 불사의 여신으로 전환되며, 여성 권위의 상징에서 제왕의 보좌자로 기능이 바뀐다. 이러한 과정은 단순한 변형이 아니라 당대의 정치적, 종교적 요구에 따라 신화의 기능이 재조정되는 문화적 행위로 해석된다. 위앤커는 이 과정을 통해 신화가 단지 이야기의 저장소가 아니라 사회적 무의식의 반영이며, 권력과 언어, 젠더와 기억의 투쟁이 작동하는 담론적 장이라 본다. 또한 그는 중국 신화를 서양 신화와 비교함으로써, 신화의 범문화적 유사성과 동시적 차이를 함께 조망한다. 그는 동양의 신화가 주로 자연 순응적이며 조화로운 세계를 강조하는 반면, 서양 신화는 인간 중심적이며 갈등과 영웅주의를 강조한다고 지적한다. 이런 비교는 동아시아 정체성 논의에 있어 중요한 기초를 제공하며, 신화가 단순한 문화재현이 아닌 사유와 가치의 구조임을 부각시킨다. 중국신화전설은 신화를 단지 연구 대상으로 삼는 것을 넘어서, 독자 스스로 신화를 ‘사는’ 존재로 경험하게 만든다.
결론적으로 위앤커의 중국신화전설은 신화라는 장르의 학술적, 철학적, 문화적 가치를 총체적으로 드러낸 역작이다. 이 책은 단순히 신화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이 시대와 문화에 따라 어떻게 변형되고 계승되는지를 서사와 사유 양 측면에서 조명한다. 위앤커는 신화를 민속의 주변 영역에서 인문학의 중심으로 끌어올리며, 독자에게 신화를 해석하는 주체로서의 역할을 부여한다. 신화는 결코 박제된 고대의 유산이 아니라,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상상하는 창조적 사유의 공간이며, 문화 정체성과 집단 기억의 기원이기도 하다. 중국신화전설은 이러한 사유를 위한 탄탄한 기반이 되어주며, 동양 고전의 현대적 해석이라는 점에서 지금도 매우 높은 가치를 지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