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재현 감독의 세 번째 오컬트 영화 파묘는 개봉 열흘 만에 500만 명을 돌파하며 예상 밖의 흥행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에 이어 다시 한번 오컬트 장르로 돌아온 장재현 감독은 한국적 무속 신앙과 음양 오행이라는 동양적 소재를 활용해 할리우드와 차별화된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파묘는 분명 재미있는 영화이지만, 전반부와 후반부의 톤 차이로 인해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한국적 소재로 완성한 오컬트 장르의 매력
파묘의 가장 큰 강점은 무속인, 풍수지리 전문가, 장의사라는 지극히 한국적인 캐릭터들을 통해 우리만의 오컬트 이야기를 구축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할리우드나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이야기 거리이며, 파묘라는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차별화된 이점입니다. 영화는 미국에 사는 부유한 의뢰인의 요청으로 100년도 더 된 무덤을 파헤치는 과정을 그립니다. 여기서 김고은이 연기한 무당 화림의 구슬 장면은 단숨에 관객을 압도하는 빼어난 연기력을 보여주며, 최민식은 묵직하게 중심을 잡고 유해진은 절제된 연기로 영화를 더욱 탄탄하게 만듭니다.
곡성과 비교했을 때 파묘는 무속 신앙과 음양 오행이라는 유사한 소재를 다루지만, 접근 방식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곡성이 미스터리를 끝까지 유지하며 점진적으로 실체를 밝혀간다면, 파묘는 비교적 이른 시점에 재앙의 근원과 실체를 드러내며 속도감을 부여합니다. 이는 전통적인 오컬트 장르의 문법에서 벗어난 선택이지만, 동시에 영화에 새로운 긴장감을 제공하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파묘까지 가는 과정에서 네 명의 전문가들이 보여주는 호흡과 직업적 특성은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며, 이도현까지 기대 이상의 연기를 선보이며 앙상블의 완성도를 높입니다. 영화 전반부는 의뢰인의 조상으로부터 화를 모면하도록 돕는다는 설정만으로도 충분히 흥미진진하며, 한국적 캐릭터들의 전문성과 개성이 빛을 발하는 구간입니다.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듯 나뉜 전후반 구조
파묘에서 가장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은 영화가 마치 1부와 2부로 나뉜 것처럼 느껴지는 구조적 특징입니다.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는 대사처럼, 파묘 역시 중반부를 기점으로 두동강이 나버립니다. 전반부에서 하나의 사건을 일단락 짓는 바람에 한창 몰입하던 관객들의 긴장감이 풀리고, 이후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김이 빠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는 일반적인 영화가 마지막까지 일관된 긴장을 유지하며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의 구조를 따르는 것과 대조적입니다. 마치 연작 드라마에서 사용하는 구조를 영화에 적용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선택의 이면에는 장재현 감독의 분명한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서로 다른 정서를 충돌시키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 속에서 "일본의 귀신은 다가가기만 해도 죽인다"는 대사가 등장하는데, 이는 한국 공포 영화의 전통적인 "한"이라는 정서와 명확하게 구분됩니다. 우리나라 공포 영화는 억울하거나 부당하게 죽임을 당한 귀신이 자신에게 위해를 가한 자에게 복수하는 권선징악의 구조를 따릅니다. 반면 일본이나 할리우드의 공포는 선량한 사람도 언제든지 악의 제물이 될 수 있다는 불가항력의 공포를 담고 있습니다. 장재현 감독은 이 두 가지 정서를 하나의 영화 안에서 충돌시키면서 전반부와 후반부를 다른 장르처럼 연출했고, 이것이 관객의 평가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습니다. 할로윈 킬즈와 할로윈 엔드가 시리즈의 근본을 뒤흔들며 실망을 안겼던 것과 유사하게, 파묘 역시 장르적 변화가 관객에게 당혹감을 줄 수 있지만, 감독의 뚜렷한 메시지 전달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파묘라는 행위에 담긴 민족주의와 역사 바로 세우기
파묘는 단순한 오컬트 영화를 넘어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메타포를 담고 있습니다. 이미 세상을 떠나 존재하지 않는 자의 시신이 묻힌 자리를 다시 파헤친다는 행위 자체가 과거를 직시하고 역사를 재조명하는 과정을 상징합니다. 영화 초반 비행기 안에서 김고은이 연기한 화림이 자신은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라고 밝히는 장면, 그리고 100년도 더 된 무덤이라는 설정은 일제강점기와 친일파라는 역사적 배경을 암시합니다. 관을 절대 열어보지 말라거나 비밀리에 진행하라는 의뢰인의 요구는 숨기고 싶은 과거, 즉 친일 행적을 가리키는 복선으로 작용합니다.
장재현 감독은 민족주의를 편의주의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파묘라는 소재 자체를 은유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친일파라는 암적인 존재가 세습되며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우리 역사의 상처를 다루되, 저열하거나 상업적인 방식이 아닌 진정성 있는 접근을 택했습니다. 영화는 어떤 병의 원인을 알아보고 치유하려면 환부를 건드리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처럼,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지우고 싶은 오역을 제대로 마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과정에서 괜한 돌팔이식이라는 반대와 비판에 부딪히는 것도 영화 속 파묘와 정확히 일치하는 지점입니다. 등장인물들이 모여서 벌이는 굿판 역시 누군가의 한을 풀어주거나 그 한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목적을 담고 있으며, 이는 파묘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결정판입니다.
다만 영화 중 한 번, 그동안 유지하던 스탠스를 갑작스럽게 벗어나 과도하게 직접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대사가 등장해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는 장재현 감독이 현실 세계를 향해 호통 치고 싶었던 사견이 담긴 것으로 보이며, 혹은 음양 오행이라는 동양적 소재로 할리우드와 차별화된 우리만의 오컬트 영화를 완성하기 위한 일종의 선언처럼 다가옵니다. 전반적으로 파묘는 일본을 대하는 데 있어 마냥 부정적인 감정의 분출을 지향하지 않았으며, 민족주의를 적나라하게 자극하려는 욕심에 매몰되지 않으면서도 영화로서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파묘는 개봉 시기가 3.1절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며 민족주의 감성에 파문을 일으킨 것이 흥행의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 정도의 흥행 성공은 영화의 기본적인 완성도가 일정 수준 이상일 때만 가능합니다. 장재현 감독의 오컬트 삼부작 중에서 순수 재미로는 사바하가 1위, 파묘와 검은 사제들이 비슷한 수준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파묘는 한국적 소재를 가장 잘 살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전반부에 비해 힘이 빠지는 후반부는 분명 호불호가 갈릴 수 있으나, 감독의 메시지 전달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여지가 충분합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youtu.be/nDl6vp9hPmU?si=4Zi9NpkTLpOclSy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