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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디두르케의 형태와 미성숙, 교육과 문명 비판, 정체성 해체 실험

by anmoklove 2025. 12. 30.

비톨트 곰브로비치의 『페르디두르케(Ferdydurke)』는 문학적 형식과 사회적 관습을 철저히 전복하는 전대미문의 실험소설이자, 인간 존재의 본질과 그 왜곡 메커니즘을 풍자적으로 해부하는 대작이다. 이 작품은 폴란드 문단에 큰 충격을 안겼을 뿐 아니라, 현대문학사에서도 가장 기이하고 도발적인 텍스트 중 하나로 손꼽힌다. 주인공 요제프가 30세의 성인이자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중학교 교실로 납치되는 서두부터, 이 소설은 독자의 일상적 인식과 문학적 기대를 완전히 뒤엎는다. 곰브로비치는 이를 통해 ‘성숙’이라는 개념 자체가 얼마나 허구적이고, 우리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얼마나 쉽게 미성숙으로 환원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페르디두르케』는 언어, 문체, 구조, 플롯 어느 것 하나 전통적인 틀에 안주하지 않으며, 철저하게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면서도 강력한 철학적 통찰을 선사한다. 본 리뷰에서는 이 작품을 구성하는 핵심 사유를 세 가지—‘형태(Forma)’와 미성숙의 개념, 교육과 문명 비판, 그리고 정체성 해체의 문학적 실험—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페르디두르케의 형태와 미성숙

『페르디두르케』의 중심 개념은 곰브로비치 문학 전반을 관통하는 ‘형태(Forma)’이다. 곰브로비치는 인간이 진정한 자아를 가지지 못한 채,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요구에 따라 끊임없이 어떤 ‘형태’를 강요받고 연기한다고 보았다. 요제프는 30세의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소설 초반, ‘피임 교수’와 ‘문학 평론가’의 논리에 의해 어린아이로 낙인찍히며, 의지와 무관하게 다시 학교로 끌려간다. 이 사건은 단순한 우화나 블랙코미디가 아니라, 인간이 자율적 존재가 되지 못하고, 타인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근본적 조건을 상징한다. ‘미성숙(Infantylizm)’은 이 소설의 또 다른 핵심 키워드로, 인간이 성숙한 척하지만 실제로는 언제든 사회적 위계와 타인의 기대에 의해 아동으로, 유치한 존재로, 미완의 개체로 환원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곰브로비치는 이를 통해 성숙이라는 개념 자체의 허구성과 폭력성을 지적한다. 우리가 성인으로서 누리는 자유, 자율성, 판단력조차도 사실은 사회가 부여한 ‘성인 역할’일 뿐이며, 언제든 그것은 박탈될 수 있다. 『페르디두르케』는 요제프가 끊임없이 다양한 형태로 환원되고 왜곡되는 과정을 통해, 정체성이란 외적 강제와 타자의 욕망이 결합된 결과일 뿐이라는 주장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들며, 인간 존재의 근본적 불안정성과 불완전성을 드러내는 강력한 장치로 작용한다.

교육과 문명 비판

『페르디두르케』는 교육, 문학, 문명화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지는 폭력과 위선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학교로 강제 송환된 요제프는 중학교 교실에서 상징적 억압을 경험하게 된다. 이곳에서는 질문조차 자유롭지 않고, 교사와 학생 간의 위계는 절대적이며, 모든 존재는 정해진 역할을 수행해야만 한다. 곰브로비치는 학교를 단지 교육기관으로 묘사하지 않고, 인간을 ‘정상적인 형태’로 훈육하는 공장, 혹은 사회적 규율의 실험실로 제시한다. 이는 단지 학교라는 공간의 비판을 넘어서, 사회 전반에 깔린 교육적 폭력의 은유이며, 문명화라는 미명 하에 인간을 순응적 존재로 만드는 시스템에 대한 해체적 분석이다. 작가는 또한 문학과 언어 역시 이러한 억압의 도구로 바라본다. 그는 기존 문학 언어의 관습, 형식, 아름다움에 대해 의심을 제기하며, 끊임없이 문장을 파괴하고, 독자를 당혹스럽게 만들며, 의미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이러한 언어 실험은 독자의 해석 욕망을 교란시키고,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문학 텍스트의 권위를 해체한다. 곰브로비치는 문학이 더 이상 현실을 재현하거나 도덕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위선과 기만, 그리고 강제된 형태의 불안을 드러내는 도발적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페르디두르케』는 그런 점에서 단지 소설이 아니라, 문학과 사회 전반에 대한 비판적 해부학이라 할 수 있다. 독자는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이 속한 문명과 교육, 언어와 정체성의 구조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정체성 해체 실험

『페르디두르케』는 전통적인 서사 구조와 인물 설정, 플롯의 전개 방식을 완전히 해체하는 급진적인 형식 실험이다. 주인공 요제프는 일관된 정체성을 유지하지 못하며, 이야기 자체는 현실과 상상, 메타픽션을 넘나드는 방식으로 서술된다. 곰브로비치는 자주 작가 자신을 작품 속에 개입시키며, 독자와 직접 대화하거나 도발적인 진술을 던지면서, 독자가 이야기의 수동적 수용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해석 주체가 되기를 요구한다. 특히 등장인물들이 말과 행동에서 끊임없이 서로를 ‘형태화’하고, 비웃으며, 규정하고 다시 해체하는 과정은 독자에게 혼란과 불안을 조성한다. 이는 단지 실험적인 형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체성이라는 개념 자체를 근본적으로 의심하게 만들기 위한 전략이다. 곰브로비치는 인간이란 고정된 자아를 가진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타인의 눈에 의해 만들어지고 다시 지워지는 유동적인 존재라고 본다. 따라서 『페르디두르케』의 독자는 인물의 성격이나 플롯의 방향에 안주할 수 없으며, 끊임없이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진실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형태인가?’를 질문하게 된다. 곰브로비치의 문학은 고통스럽지만, 그것이야말로 진실에 가까운 사유의 과정임을 암시한다. 그는 문학을 통해 정체성을 고정하고 의미를 확정짓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확실성을 붕괴시키고, 인간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장을 창출한다. 『페르디두르케』는 그런 점에서 소설이라는 형식 자체를 해체하고, 독자와의 새로운 문학적 관계를 탐색하는 전위적 작품이며,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불편하고도 강력한 도전이다.

결론적으로 『페르디두르케』는 단순한 이야기나 철학의 전달이 아니라, 독자 스스로가 자신의 ‘형태’를 자각하게 만드는 문학적 실험이다. 곰브로비치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 존재의 정체성과 성숙, 언어와 사회, 문화와 도덕이라는 거대한 구조들이 실은 얼마나 취약하며, 타자의 시선에 의해 구성된 허구임을 드러낸다. 『페르디두르케』는 그 모든 구조를 파괴하고, 독자로 하여금 새로운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게 만드는 해체적 장치로 기능한다. 불편하고 혼란스럽지만, 동시에 독자를 끊임없이 사유하게 만드는 이 소설은, 현대 문학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급진적이고 철학적인 지점에 서 있다. 우리는 이 작품을 읽는 동안 자신이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그 질문조차도 타인의 시선에 의해 규정되어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페르디두르케』는 그런 점에서 단순한 문학 작품이 아니라, 하나의 철학적 선언이자, 독자와 작가가 함께 참여하는 실존적 해방의 장이다.

페르디두르케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