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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노그라피아의 조작의 쾌락, 형태와 성숙, 죄의 심리

by anmoklove 2025. 12. 30.

비톨트 곰브로비치의 『포르노그라피아』는 문학사상 유례없는 불편함과 매혹으로 가득 찬 소설이다. 이 작품은 단순히 제목이 암시하는 육체적 성애를 다룬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 욕망의 구조, 타인을 조작하려는 심리, 그리고 권력과 죄의식이 교차하는 복잡한 내면의 사슬을 치밀하게 드러낸 철학적 심리극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점령 하의 폴란드를 배경으로, 이 소설은 폭력과 통제의 시대 속에서 인간이 어디까지 타인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고, 그 책임으로부터 도피하려 하는지를 보여준다. 주인공인 중년 남성 헨리크와 그의 친구 프레데릭은 시골 별장에서 두 청소년, 헨리아와 카롤을 대상으로 이상하고 은밀한 심리적 실험을 감행하며, 그들의 관계를 조작하고 촉진하는 행위를 통해 자신들의 무기력한 욕망을 충족시키려 한다. 이 이야기의 기묘함은 성적인 행동보다, 행동을 유도하고 조작하는 과정에 있다. 본 리뷰에서는 『포르노그라피아』를 세 가지 키워드—조작의 쾌락, 곰브로비치의 '형태' 이론과 성숙의 패러독스, 죄의식과 도덕의 해체—를 중심으로 분석한다.

포르노그라피아의 조작의 쾌락

『포르노그라피아』의 가장 핵심적인 심리적 장치는 ‘조작의 쾌락’이다. 헨리크와 프레데릭은 자신들이 더 이상 직접적으로 성적 욕망을 실현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으며, 그 대신 헨리아와 카롤이라는 두 청소년 사이의 긴장과 감정을 유도하고 조율함으로써 대리 만족을 추구한다. 이 과정은 매우 은밀하고 의도적으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두 청소년이 서로에게 무심한 듯 보이면 그들은 그 사이에 강제로 감정의 틈을 만들어내기 위한 상황을 조작하고, 둘이 가까워지는 듯하면 그 긴장을 증폭시키기 위해 새로운 변수나 충돌을 삽입한다. 이처럼 그들은 행동하지 않으면서도 행동하게 만들고, 참여하지 않으면서도 관여하며, 모든 것을 움직이는 무형의 조종자가 된다. 이런 행위는 단순한 관음증이나 변태적 성향이 아니라, 인간이 타인을 통해 자신의 무력한 욕망을 되살리고자 하는 구조적 욕망을 드러낸다. 헨리크와 프레데릭은 마치 연극의 연출가처럼, 감정의 무대를 설계하고, 등장인물들의 대사와 몸짓을 주도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정체성과 권능을 부여한다. 그러나 이 ‘조작의 쾌락’은 곧 파괴의 씨앗이 되며, 두 청소년의 운명은 그들의 조작을 넘어서 비극으로 치닫는다. 이는 독자에게 묻는다. 우리는 타인의 자유를 얼마나 존중하고 있는가? 혹은, 우리는 누구의 인생에 침투하고 있는가? 곰브로비치는 이 작품을 통해, 욕망이 실현되는 방식이 얼마나 비윤리적이고 은폐된 폭력으로 가득 차 있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중년이라는 생물학적 시간성과 무력감이 이 조작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드는 지점은, 인간 본성의 어두운 이면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핵심 장치다.

형태와 성숙

곰브로비치 문학의 중심에는 ‘형태(Forma)’라는 개념이 있다. 그는 인간이 타인 앞에서 끊임없이 어떤 ‘형태’를 유지하려 하고, 그 형태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구성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 ‘형태’는 타인의 시선에 의해 결정되는 외적 구조물이며, 진정한 자아는 오히려 그 틀을 깨려는 내면적 움직임에 있다. 『포르노그라피아』에서 중년의 주인공들이 청소년을 조작하고 관찰하는 이유는 단지 성적 대상화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형태 붕괴'를 회피하기 위한 행위이기도 하다. 즉, 그들은 더 이상 ‘형태’를 유지할 수 없는 위치에 있으며, 젊음과 가능성, 무의식과 자유의 상징인 청소년을 통해 잃어버린 자아를 되찾으려 한다. 곰브로비치는 이를 통해 ‘성숙’이라는 개념 자체를 전복시킨다. 그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인간이 더 깊이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타인의 시선에 더 깊이 매몰되고, 자유로부터 멀어진다고 본다. 성숙이란 자율이 아니라 순응이고, 자유가 아니라 역할 수행이며, 인간은 결국 자신의 ‘형태’ 속에서 타인을 연기하는 배우로 전락한다고 그는 비판한다. 헨리크와 프레데릭은 자신들이 이 ‘성숙’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고통스럽게 인식하며, 청소년들의 즉흥성과 불완전함 속에서 오히려 진실한 인간됨을 보고자 한다. 그러나 그 시도는 성공하지 못하고, 결국 그들이 기획한 조작은 돌이킬 수 없는 현실적 파국을 초래하게 된다. 이처럼 『포르노그라피아』는 인간 존재의 정체성 문제를 다룬 철학적 실험이자, 문학의 형식 자체를 실험하는 탈전통적 구조를 가진 작품이다.

죄의 심리

『포르노그라피아』는 독자에게 끝없는 불편함을 제공한다. 단지 등장인물들이 미성년자들을 조작하고 관찰한다는 설정 때문만은 아니다. 이 작품이 던지는 진짜 불편함은, 도덕이라는 것이 얼마나 취약하고 가변적인가, 그리고 죄의식이 어떻게 도덕적 책임을 우회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 때문이다. 헨리크와 프레데릭은 자신들의 행동이 비윤리적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지만, 그 자각이 행동의 중단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의 죄의식을 예술적 혹은 존재론적 정당화로 포장하고, ‘나는 단지 인간의 본성을 관찰하고 있을 뿐’이라는 자기합리화로 덮는다. 이 점에서 『포르노그라피아』는 인간의 도덕적 구조가 얼마나 허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를 폭로한다. 특히 전쟁이라는 비정상적인 시대 상황은 이들의 윤리적 해체를 더욱 가속화시킨다. 현실이 이미 도덕의 붕괴를 허용하고 있기에, 그들은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느낄 수 있는 여지를 가진다. 하지만 이러한 윤리의 유예 상태는 결국 더 큰 죄를 낳는다. 소설 말미에 이르러, 조작된 감정과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범죄로 이어지며, 독자는 이들이 스스로 만든 파멸의 회로에서 빠져나올 수 없음을 보게 된다. 곰브로비치는 이러한 결말을 통해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죄의식이 항상 도덕적 구속력으로 작동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기기만과 자기정당화를 낳을 수 있음을 예리하게 지적한다. 이로써 『포르노그라피아』는 도덕이라는 개념 자체를 해체하고, 우리가 ‘옳음’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얼마나 취약한 감정적 합의에 불과한지를 보여주는 철학적 문학이 된다.

결론적으로 『포르노그라피아』는 단순한 스캔들이나 성적 자극을 위한 소설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가장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곰브로비치는 욕망, 조작, 권력, 책임, 도덕이라는 개념들을 해체하고, 그것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연약하고 이중적인 존재인지를 냉혹하게 보여준다. 헨리크와 프레데릭은 단지 개인적 일탈을 보여주는 인물이 아니라, 우리가 사회 속에서 서로를 어떤 방식으로 조작하고 해석하며 살아가는지를 상징한다. 『포르노그라피아』는 독자에게 깊은 불쾌감을 주지만, 그 불쾌함을 통해 스스로의 윤리감각과 인간성에 대해 다시 사유하게 만든다. 이 작품은 문학이 어떻게 인간의 내면을 비추고, 독자를 도전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예라 할 수 있으며, 곰브로비치는 그 불편한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인 작가다.

포르노그라피아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