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욱 감독의 신작 '헤어질 결심'은 2022년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용산 아이파크몰 CGV에는 '박찬욱관'이라는 예술 영화 전문 상영관이 있을 만큼, 그는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많은 사랑과 존중을 받는 감독입니다. '올드보이'로 한국 영화의 수준을 세계에 증명했고, '아가씨'로 파격을 보여준 그가 5년 만에 선보인 이 작품은 격렬한 베드신 없이도 가장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완성했습니다. 15세 관람가임에도 불구하고 스토리의 깊이와 주제의 진정성은 오히려 더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박찬욱 연출의 정수: 관찰과 관음의 미학
박찬욱 감독 특유의 상상과 현실을 겹쳐서 표현하는 연출은 '헤어질 결심'에서도 여전히 빛을 발합니다. '올드보이'의 과거 회상 장면에서 선보였던 이 기법은 이번 작품에서 중요한 장면마다 등장하며 상황과 심리를 섬세하게 전달하는 도구로 활용됩니다. 특히 형사 해준(박해일)과 용의자 서래(탕웨이)가 통화할 때, 마치 같은 공간에 있는 것처럼 공간을 넘나드는 연출은 두 사람의 마음이 전달되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합니다.
영화는 사랑의 시작을 '관찰'로부터 풀어냅니다. 해준이 서래를 관음하는 장면들은 단순히 수사를 위한 감시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싶어서 자꾸만 관찰하게 되는 인간의 본능을 드러냅니다. 망원경을 동원해 서래의 집을 바라보고, 집 앞에서 잠복하며, 심지어 화장실에 있는 서래를 몰카처럼 바라보는 장면들은 끈적거리지 않으면서도 묘한 긴장감을 자아냅니다. 해준이 서래를 바라보며 내는 야릇한 신음 소리, 그리고 이후 서래가 범인을 검거하는 해준을 보며 침을 삼키고 입맛을 다시는 장면은 둘 다 같은 '변태'라는 것을 보여주며 속도의 차이만 있을 뿐 본질은 같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클로즈업 연출입니다. 일반적으로 망원경 시점 장면에서는 관찰 대상을 클로즈업하지만, 이 영화는 거꾸로 해준을 클로즈업합니다. 상대를 관찰하는 순간 자신에게 그 관찰의 대상이 스며든다는 것을 표현하는 동시에, 해준이 지금 몰래 서래를 관찰 중이라는 것을 폭로하는 연출입니다. 이러한 섬세한 연출은 박찬욱 감독만이 구현할 수 있는 영화적 언어이며, 소재에 대한 반감을 영리하게 피하면서도 사랑과 이별에 대해 깊이 있게 고찰하게 만듭니다.
사랑과 관찰: 불면증에서 숙면으로의 여정
해준은 뛰어난 수사 능력을 갖춘 엘리트 경찰이지만, 불면증에 시달립니다. 그의 불면증은 단순한 수면 장애가 아닌, 불안하고 균열된 삶을 상징합니다. 아내 정안(이정현)과의 관계는 경직되어 있고, 둘의 잠자리는 의무처럼 느껴집니다. 정안이 원자력발전소에서 일하며 모든 것이 안정적으로 통제되는 상태를 행복이라 여기는 반면, 해준은 그녀가 원하는 우라늄이 아닙니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관계를 가져야 하고, 아내에게 저녁식사를 대접해야 하는 조건들을 채우며 소모되는 해준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날씨가 좋은 날 등산 중 사망한 시신이 발견되고, 그 아내인 서래가 용의선상에 오릅니다. 중국인으로 한국말이 서툰 서래는 남편이 산에 갈 때 어떤 심정이었냐는 질문에 "마침내 죽을까 봐 걱정했어요"라고 대답합니다. '마침내'라는 부사가 그녀의 무의식을 폭로하는 순간입니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말 실수는 무의식의 발현이고, 영화는 이를 짓궂게 드러냅니다.
해준과 서래의 첫 만남부터 둘은 서로에게 빠져듭니다. 해준이 서래에게 시마스 10 모듬초밥을 사주는 장면에서, 그는 물고기 모양의 간장 튜브를 쭉 짜서 줍니다. 다른 여자를 위해 간장을 짜준다는 것, 요즘 유행하는 '깐 풍대기 주기' 논쟁보다 훨씬 더 강렬한 장면입니다. 해준의 튜브는 텅텅 비었고, 다른 튜브는 꽉 차 있는 대조적인 모습은 해준이 서래에게 완전히 정신이 팔렸음을 보여줍니다. 초밥은 해준에게 특별한 음식입니다. 아내 정안에게 "초밥은 아무거나 먹고 싶지 않아, 소쿠리라구요"라고 말했던 그가 서래에게 특별한 초밥을 사준 것은 이미 외도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해준의 불면증은 서래와의 관계에서 극적으로 변화합니다. 서래의 집 앞에서 잠복하다 잠들어버린 해준의 모습은 그가 이미 서래 앞에서 무장 해제되었다는 것, 그리고 해준에게 서래가 필요하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서래 역시 해준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고 다시 끼며 해준의 시선을 유도합니다. 두 사람은 이렇게 서로를 탐색하며, 말과 행동과 외모를 통해 점점 더 깊이 빠져듭니다. 산을 싫어한다는 서래의 말에 "어, 나도"라고 반응하는 해준, 초밥을 먹고 식탁을 정리할 때 척척 호흡을 맞추는 두 사람의 모습은 둘이 완벽하게 잘 맞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미결 사건의 의미: 영원한 사랑의 방법
영화 후반부는 서래의 이야기가 주도합니다. 홍산호라는 인물이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감옥에 갈 각오로 폭력을 저질렀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장면은 중요한 복선입니다. 서래는 해준에게 "죽을 만큼 사랑했네"라고 말하며, 이는 곧 자신의 결말을 예고합니다. 해준은 미결 사건을 절대로 잊지 않습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미결 사건의 사진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죽은 사람의 눈을 들여다봅니다. 이것이 그의 불면증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서래는 이를 정확히 이해합니다. 그래서 홍산호가 죽었을 때 바로 달려와 사진을 태워버리고 해준의 숙면을 도와줍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남편 사건도 슬쩍 같이 태워버리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해준이 걸어둔 자기 사진은 굳이 없애지 않습니다. 담배 역시 중요한 도구입니다.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해준의 말은 서래를 만나고 싶다는 말처럼 들리고, 서래가 해준의 집에서 담배를 피운 날 밤, 정안은 해준에게 "담배 피웠어?"라고 묻습니다. 해준은 "정한테도"라고 덧붙이지만, '피웠다'가 '바람을 피웠다'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해준이 서래에게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아무도 찾을 수 없게 해요"라고 말하는 장면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달콤한 사랑 고백입니다. 자신을 무너뜨리고 형사로서의 자부심을 포기하면서까지 서래를 지키려 했던 해준의 붕괴가 곧 사랑의 증명이었습니다. 서래는 이 말을 그대로 실천합니다. 폰을 바다에 버리듯 자신을 바다에 버리고, 아무도 찾을 수 없게 만듭니다. 해준은 바로 발밑에 있는 서래를 찾지 못하고, 서래는 영원히 해준의 미결 사건으로 남게 됩니다.
서래가 집에서 혼자 녹음된 소리를 듣는 장면은 최고의 명장면입니다. 해준이 던지는 가시 돋힌 말들은 너무 가슴이 아파서 차마 다 듣지 못하고 건너뛰기를 하다가, 결국 그 사랑 고백에 도달합니다. 그리고 서래는 해준과의 추억을 담은 물건들을 간직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시마스 모듬초밥 때 해준이 짜준 빈 간장 튜브까지 있습니다. 서래는 해준이 간장을 짜준 것을 기억하고 그것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정도면 거의 미쳐버린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박찬욱 감독은 사랑을 표현하는 데 있어 격렬한 베드신 대신 더 깊고 섬세한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영화에서 유일한 성애 장면은 해준과 정안의 의무적인 관계뿐이고, 해준과 서래의 유일한 키스조차 대사들과 눈빛, 그리고 관찰의 순간들에 비하면 덜 중요합니다. 냄새를 맡는 것이 사랑의 조건이라는 설정도 인상적입니다. 서래는 중국에서 한국에 올 때 똥으로 범벅이 된 상태였고, 남편 기도수는 그녀의 냄새를 맡아줬습니다. 정안이 참을 수 없어 하는 담배 냄새를 새로운 남편 임호신도 싫어하지만, 서래는 담배를 피우는 자신의 입에서 담배를 잡아 한번 빨아주는 해준을 보며 미소합니다.
'헤어질 결심'은 2022년 최고의 영화이자, 2019년 '기생충'에 버금가는 작품입니다. 박해일의 감정 연기는 '살인의 추억'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관객을 사로잡았고, 탕웨이는 칸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아도 손색없을 만큼 완벽한 연기를 보였습니다. 고경표와 김신영 역시 훌륭한 조연 연기로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 작품은 박찬욱의 히치콕 오마주이자, 그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완성한 걸작입니다. 이 정도로 절절한 사랑 이야기, 이보다 치밀하게 계산된 대사와 연출, 그리고 차갑고 건조했던 과거 작품과는 달리 따뜻함마저 느껴지는 변화까지,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이 왜 위대한 감독인지를 다시 한번 증명합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5) '헤어질 결심'이 올해 최고의 영화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 그리고 박찬욱: 헤어질 결심 리뷰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t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