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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돼지꿈의 분단의 아이러니, 인간의 욕망, 배신과 생존

by anmoklove 2026. 1. 10.

돼지꿈

황석영 작가의 단편소설 『돼지꿈』은 분단과 전쟁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인간의 본성, 욕망, 그리고 생존에 대한 아이러니를 압축적으로 담아낸 수작이다. 이 작품은 작가 특유의 사실주의적 서사와 상징적 장치들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단순한 전쟁 이야기 그 이상을 제시한다. 특히 남과 북, 체제와 이념, 민중과 권력 사이의 긴장 관계를 ‘돼지’라는 상징을 통해 전개함으로써, 인간 존재의 복잡성과 정치적 현실의 허구성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소설의 배경은 한국전쟁 이후 남북 간의 팽팽한 대립이 계속되는 가운데, 민간인의 삶은 이미 이념의 외피 아래 고통스럽게 소외되어 버린 현실이다. 주인공은 탈북자이자 남한 군대에서 협조자 노릇을 하며 살아가는 인물로, 그의 삶은 철저히 생존을 위한 선택의 연속이다. 그러나 그 선택들은 결국 배신으로 이어지고, 마지막에는 돼지우리에 빠져 죽음에 이른다. 이 죽음은 상징적으로 너무나 강렬하다. 돼지꿈이라는 제목이 말하듯, 인간이 동물보다도 못한 존재로 전락하는 과정을 통해, 작가는 전쟁과 분단이 개인에게 남긴 상처와 무력함을 형상화한다. 본 리뷰에서는 이 작품을 세 가지 축으로 분석한다. 첫째, 분단 현실과 그 안에서 드러나는 인간 존재의 아이러니. 둘째, 욕망과 배신이라는 동기의 반복과 그것이 보여주는 체제적 억압. 셋째, 돼지라는 상징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성과 비인간성의 경계. 『돼지꿈』은 단편소설이 가질 수 있는 문학적 밀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리며, 독자에게 강력한 윤리적·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황석영 돼지꿈의 분단의 아이러니

『돼지꿈』은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비극 이후에도 지속되는 분단 체제의 모순과 폭력을 배경으로 삼는다. 이 소설에서 ‘북한 출신’이라는 정체성은 단지 출신 지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남한 사회에서 끊임없이 감시와 의심, 차별의 대상이 되는 낙인이다. 주인공은 전쟁 중 포로로 잡힌 뒤 남한으로 내려왔고, 그곳에서 남한 정보기관의 협조자로 활동한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살아가지만, 결국 본인의 기원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잊을 수 없으며, 그 정체성은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철저히 고립되게 만든다. 이처럼 소설은 단지 남북이라는 공간적 대립만이 아니라, 개인 내부의 분열과 이중성까지도 다룬다. 주인공은 남한의 체제에 적응하며 살아가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배척당하고 의심받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북한 정권의 공포에서 탈출했지만, 남한 사회에서도 진정한 자유를 얻지 못한다. 이 같은 상황은 분단 체제가 개인에게 어떤 식으로 ‘귀속되지 못함’을 강요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특히 돼지우리라는 공간은 그러한 이중적 배제의 상징이다. 주인공은 돼지를 관리하며 생계를 유지하지만, 결국 그 돼지우리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 죽는다. 이는 인간이 더 이상 인간으로서 존재하지 못하는 상황, 다시 말해 체제의 이름으로 인간성마저 파괴되는 현실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황석영은 이 소설을 통해 단지 체제의 대립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체제 이면에 존재하는 폭력, 특히 그것이 어떻게 개개인의 삶을 구조적으로 파괴하고, 인간다움을 상실하게 하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분단은 정치적 현실이 아니라, 존재론적 위기로서 작용하며, 주인공의 죽음은 그러한 위기의 가장 비극적인 결말이다.

인간의 욕망

『돼지꿈』에서 욕망은 단지 물질적 탐욕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이며, 체제에 의해 끊임없이 유도되고 조작되는 감정이다. 주인공은 처음에는 단순히 생존을 위해 남한 측의 정보원이 되기를 수락하지만, 이후 그 역할이 점차 확대되면서 그는 타인을 감시하고 밀고하는 일을 일상화한다. 처음엔 비자발적이었던 행위가 반복되면서 점점 능동적 배신으로 전환되는 과정은, 인간의 도덕성이 어떻게 현실의 무게에 의해 침식되어 가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주인공이 같은 북에서 내려온 동료를 밀고하는 장면은, 단지 한 사람을 배신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와 정체성까지도 배신하는 행위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은 체제의 생존 논리 안에서 정당화된다. 그는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자신이 쓸모 있는 존재로 남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타인을 팔아야 한다. 이런 반복적인 배신은 어느 순간 죄책감조차 마비시키고, 결국 그는 ‘돼지처럼’ 사는 삶에 익숙해진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같은 욕망은 그를 구원하지 않는다. 결국 그는 이용가치가 사라졌다고 판단되자,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않고, 돼지우리라는 폐기처분의 공간에 방치된다. 황석영은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욕망은 과연 생존의 도구인가, 아니면 타락의 촉매인가? 소설은 이 둘을 명확히 분리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현실 속에서는 하나로 얽혀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사람은 살기 위해 욕망하지만, 그 욕망이 타인을 파괴하고, 나아가 자기 자신까지도 파괴하게 되는 구조 속에 있다면, 그 삶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돼지꿈』은 그 질문을 가장 비극적이고도 압축적인 방식으로 제시하며, 욕망이라는 인간의 본능이 어떻게 체제 안에서 오용되고 변질되는지를 보여준다.

배신과 생존

이 소설에서 ‘돼지’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과 타락, 체제의 생명정치를 상징하는 복합적 장치다. 주인공은 돼지를 관리하며 생계를 이어가지만, 그 돼지는 단지 먹고 살기 위한 대상이 아니라, 점점 자신의 존재와 동화되는 존재가 된다. 그는 자신을 돼지처럼 여기고, 돼지우리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마지막에는 돼지우리 속에서 죽음을 맞는다. 이는 단순한 동물화가 아니라, 체제가 인간을 돼지처럼 ‘관리’하고 ‘감시’하며 ‘사육’하는 방식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황석영은 돼지우리를 통해 인간이 어떻게 존재론적 바닥으로 밀려나고, 심지어 그 상태에 무감각해지는지를 강렬하게 형상화한다. 특히 주인공이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은, 마치 인간으로서 마지막 존엄마저 상실한 채 체제의 쓰레기로 버려지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여기서 돼지는 더 이상 ‘타자’가 아니라, 인간 그 자체다. 우리는 모두 돼지가 될 수 있으며, 아니 이미 돼지처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냉소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 또한 꿈이라는 모티프는 무의식과 욕망의 세계를 암시하며, 돼지꿈은 단지 부(富)의 상징이 아닌, 인간의 내면 깊숙이 침투한 타락의 무의식, 혹은 죄책감 없는 무감각의 상징으로 작용한다. 이처럼 황석영은 소설의 제목부터 결말까지 돼지라는 상징을 일관되게 유지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인간과 동물의 경계는 무엇인가’, ‘인간성을 상실한 삶도 삶이라 부를 수 있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돼지꿈』은 단편이라는 짧은 형식 안에서 인간의 존엄, 체제의 폭력성, 상징의 위력, 그리고 문학이 다룰 수 있는 가장 깊은 윤리적 질문까지 압축한, 놀라운 작품이다.

결론적으로 황석영의 『돼지꿈』은 한국 현대사의 가장 아픈 지점을 배경으로, 한 인간의 생존과 타락, 욕망과 배신, 그리고 체제 속에서 철저히 비인간화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 수작이다. 이 작품은 단지 분단문학이나 이데올로기 문학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이 처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조건에서조차 어떻게 살아남으려 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잃고 어떤 존재로 전락하는지를 날카롭게 성찰한다. 돼지라는 상징을 통해 인간성과 비인간성의 경계를 탐색하고, 욕망이라는 감정이 어떻게 체제에 의해 조작되고 오염되는지를 보여주며, 독자에게 단순한 동정이 아닌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이 소설은, 단편문학이 지닐 수 있는 윤리적 힘과 문학적 깊이를 모두 갖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