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아이들의 우화와 종교, 권력 구조, 인간의 고통
나지브 마흐푸즈의 『우리 동네 아이들(Children of the Alley)』은 아랍 문학사에서 가장 논쟁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작품 중 하나로, 종교와 권력, 정의와 고통, 인간의 구원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우화적 서사 구조 안에 담아낸 걸작이다. 이 작품은 겉으로는 카이로 빈민가의 한 골목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세습적 권력과 억압, 그리고 이에 맞서 싸운 인물들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은 아브라함 계통 종교의 중심 인물들—아담, 모세, 예수, 무함마드—을 각각 현대적 인물로 재현한 상징 구조를 갖는다. 작중 등장하는 '기발'은 신을, 그의 자식들은 선지자들을, 그리고 골목은 세계 그 자체를 상징한다. 각 시대의 '구원자'가 등장해 악을 물리치고 질서를 바로잡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부패와 억압이 반복된..
2026. 1. 5.
오이디푸스 왕의 운명과 자유, 자아 인식, 비극의 아이러니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은 단순한 신화적 이야기나 숙명론적 비극을 넘어, 인간 존재와 진실, 자유의지를 둘러싼 철학적 탐구로 읽힌다. 고대 그리스 비극의 정점으로 평가받는 이 작품은 기원전 5세기경 초연되었으며, 이후 서양 문학사와 철학, 심리학에 이르기까지 깊은 영향을 끼쳤다. 주인공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으로서 정의롭고 지혜로운 통치자처럼 보이지만, 전염병으로 고통받는 도시를 구하기 위해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존재라는 끔찍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이 작품의 핵심은 ‘진실을 알기 위한 여정’ 자체가 오이디푸스의 몰락을 가져온다는 점이다. 그는 진실을 원하고,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지만, 그 결과는 파멸이다. 아이러니와 운명, 자아 인식의 비극은 이 작품을..
2026. 1. 4.
닫힌 방의 자유와 자기기만, 타인의 시선, 실존적 지옥
장폴 사르트르의 희곡 『닫힌 방(Huis Clos)』은 실존주의 철학의 본질을 무대 위에서 가장 압축적이고 강렬하게 구현한 작품이다. “타인은 지옥이다(L’enfer, c’est les autres)”라는 말로 유명한 이 작품은, 전통적인 지옥이나 도덕적 형벌의 이미지 대신, 단지 세 명의 인물이 한 방 안에 갇혀 서로를 마주보며 살아가야 하는 설정만으로 인간 존재의 본질적 조건과 갈등을 드러낸다. 작품은 무대 장치가 거의 없는 단일 공간에서 진행되며, 인물들의 대사와 관계의 역동만으로 극이 구성된다. 등장인물인 가르상, 이네스, 에스텔은 모두 죽은 후 지옥에 도착했지만, 그곳은 불과 칼, 형벌이 가득한 고통의 장소가 아니라, 거울 없는 응접실 같은 공간이다. 이들은 처음에는 자신이 왜 이곳에 왔는지를 ..
2026. 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