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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밭의 고독 속에서의 욕망의 거래, 언어의 권력, 고독의 철학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의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Dans la solitude des champs de coton)』는 현대 프랑스 희곡의 중요한 이정표이자, 언어를 통해 존재의 조건을 탐색하는 철학적 극작품이다. 1985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두 명의 인물, 즉 ‘딜러’와 ‘고객’으로 명명된 익명의 존재들이 밤의 도시 한복판, 혹은 추상적인 장소에서 나누는 대화로만 이루어져 있다. 무대 장치도 명확하지 않고, 줄거리 또한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이들은 ‘거래’라는 행위 혹은 가능성을 중심에 두고, 대화라기보다는 철학적 격투에 가까운 언어의 충돌을 지속한다. 이 작품은 어떤 물건이 거래되는지 말하지 않으며, 딜러와 고객의 욕망은 명시되지 않고 암시로만 흐른다. 바로 이 지점에서 콜테스의 문학은 가장 .. 2026. 1. 15.
미겔 스트리트의 식민지의 일상성, 인물들의 아이러니, 성장과 탈출의 서사 V. S. 나이폴의 『미겔 스트리트(Miguel Street)』는 트리니다드 포트오브스페인의 한 거리, ‘미겔 스트리트’를 배경으로 한 열일곱 편의 단편이 연작 형식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겉으로는 단순한 유머와 일상 묘사로 가득하지만, 그 이면에는 식민지 사회의 모순, 인간의 무력감, 정체성 혼란, 그리고 탈출의 욕망이 깊이 깔려 있다. 나이폴은 어린 시절 자신이 살았던 공간을 회상하면서도, 그 공간을 냉철하게 관찰하고 풍자한다. 이 작품은 개인적 기억의 서사이면서도, 보편적 인간 조건에 대한 탐색이자, 식민지 이후 문학이 감당해야 할 현실의 기록이기도 하다. 특히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상한 사람들’—폭력적인 남자, 실패한 시인, 허세로 가득한 청년, 꿈만 꾸는 사업가 등—은 단순히 우스꽝스러운.. 2026. 1. 14.
문학이란 무엇인가의 자유와 책임, 작가의 참여, 문학의 실천성 장폴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Qu'est-ce que la littérature?)』는 단순한 문학 이론서가 아니다. 이 책은 실존주의 철학의 핵심 개념들을 기반으로 문학이라는 행위, 작가라는 존재, 언어라는 수단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기능해야 하는지를 정치적, 윤리적, 존재론적으로 분석한 선언문이자 비판적 에세이다. 사르트르는 이 책에서 독자에게 단 하나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왜 쓰는가?” 그는 이 물음을 단지 문학 창작의 동기나 심리적 계기에 머물지 않고, 인간 존재가 세계와 맺는 관계의 방식, 자유와 선택, 책임이라는 실존주의의 핵심 개념들과 연결시킨다. 문학은 단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 행위가 아니라, 세계에 어떤 변화를 가하기 위한 ‘참여’이며, 작가는 독자를 향해 세계를 열어.. 2026. 1. 13.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의 가족의 위선, 진실의 회피, 성적 억압의 그림자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Cat on a Hot Tin Roof)』는 20세기 미국 희곡사에서 가장 강렬하고 심리적으로 정교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1955년 초연 이후 퓰리처상과 토니상 수상이라는 명성을 얻게 된 이 작품은 단순한 가족극을 넘어 인간의 내면적 파국과 억압, 그리고 진실을 둘러싼 감정적 폭력을 정면으로 다룬다. 작품의 무대는 미시시피주 남부의 대농장을 배경으로, 중심 인물 브릭과 그의 아내 매기, 아버지 빅 대디, 어머니 빅 마마, 형 쿠퍼와 그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며 발생하는 감정의 충돌이 핵심을 이룬다. 표면상으로는 가족의 상속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실질적으로는 각 인물의 내면적 갈등, 특히 브릭이 겪는 성적 억압과 정체성 혼란, 매기의.. 2026. 1. 12.
모렐의 발명의 환상과 현실, 존재와 복제, 고독과 사랑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의 『모렐의 발명(La invención de Morel)』은 철학적 사유와 공학적 상상력이 결합된,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걸작이자 SF와 환상문학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발표 당시(1940년)로서는 매우 독창적인 소재였던 ‘복제된 존재’, ‘가상 공간’, ‘기억의 기계’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사랑과 고독, 존재론적 위기까지 폭넓게 사유하며 전개되는 이 작품은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서사적·개념적 밀도를 자랑한다. 보르헤스는 이 작품에 서문을 쓰며 “플롯의 완벽함을 처음 경험했다”라고 평가했으며, 이후 많은 문학가들과 철학자들이 『모렐의 발명』을 현대 문학의 이정표로 인정했다. 이 소설은 범죄자로 쫓기는 익명의 ‘화자’가 외딴 섬에 숨어들면서 시작된다. 그곳에서 그는 .. 2026. 1. 11.
황석영 돼지꿈의 분단의 아이러니, 인간의 욕망, 배신과 생존 황석영 작가의 단편소설 『돼지꿈』은 분단과 전쟁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인간의 본성, 욕망, 그리고 생존에 대한 아이러니를 압축적으로 담아낸 수작이다. 이 작품은 작가 특유의 사실주의적 서사와 상징적 장치들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단순한 전쟁 이야기 그 이상을 제시한다. 특히 남과 북, 체제와 이념, 민중과 권력 사이의 긴장 관계를 ‘돼지’라는 상징을 통해 전개함으로써, 인간 존재의 복잡성과 정치적 현실의 허구성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소설의 배경은 한국전쟁 이후 남북 간의 팽팽한 대립이 계속되는 가운데, 민간인의 삶은 이미 이념의 외피 아래 고통스럽게 소외되어 버린 현실이다. 주인공은 탈북자이자 남한 군대에서 협조자 노릇을 하며 살아가는 인물로, 그의 삶은 철저히 생존을.. 2026. 1. 10.